토마스, 동수, 세현, 문상명, 회장님의 공통점은?
바로 ‘투명인간’. 2001년 KBS 개그 콘서트 ‘갈갈이 삼형제’의 토마스부터 SBS 웃찾사 ‘혼자가 아니야’의 동수, SBS 드라마 ‘하늘이시여’의 배득이 아들 세현, MBC ‘하얀거탑’의 외과 과장 후보였던 문상명, 최근 30·40대 직장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SBS 웃찾사 ‘회장님의 방침’에 나오는 회장님(유일하게 실루엣은 나온다)까지 이름은 나오지만 절대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부류들이다. 하지만 극을 이끌어가는 데 분명 중요한 ‘코드’로 작용하고 있다.
◆ “왜 해야 하냐고? 다, 회장님의 방침일세”
SBS ‘웃찾사’에서 한 달 전 새롭게 시작한 이 코너는 한 증권회사를 배경으로 사장과 말 부장(말처럼 얼굴이 길다고), 모범생 김 과장, 김 대리가 회장님의 말도 안 되는 지시를 억지로 따라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회장님 애완견 탄생 7주년이 됐다고 개옷걸이를 턱 사이에 끼고 우스꽝스러운 포즈를 취해야 하며, 증권회사 사원이 정수기를 팔러 다녀야 된다. 급기야 식당 아줌마들은 파업하고 군대에 갔다. 왜 그래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되는지 그런 건 알 수 없다. 그냥 ‘회장님 방침’이니까.
보이진 않지만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는 ‘회장님’이 이번 세태 풍자 무개념 개그의 중심축이다. 스크린을 통해 실루엣만 보이는 ‘회장님’을 두고 네티즌들은 벌써부터 회장님의 캐릭터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애견 마니아에 몸뻬를 좋아하는 오타쿠(특유 마니아층)적 성격이 있다는 둥 앞다퉈 의견을 내고 있다. ‘웃찾사’ 박상혁 PD는 “대학로 소극장에서 이들이 같은 제목의 프로그램을 하는 걸 봤는데 딱 감이 왔다”며 “절대 존재인 회장님의 비중을 더 키우되 실루엣 처리했더니 더 존재감이 확실해지고 팬들의 호감도도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안 보여야 뜬다!
동수는 웃찾사 ‘혼자가 아니야’ 코너에서 왕따당하는 학생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로 스포츠 팬들 사이에선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다. ‘동수와 악수하는 베컴’, ‘동수와 어깨동무하는 박지성’ 등의 사진은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며 엄청난 댓글을 몰고 다녔다. ‘갈갈이 삼형제’의 토마스가 연기생활이 그리워 한국으로 돌아온 뒤 개명해 ‘동수’로 이름을 바꿔 출연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다.
웃찾사 ‘형님뉴스’에서 길용이의 라이벌이자 이름만 등장하는 가상의 존재 ‘덕근이’의 경우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급기야 코미디언 김기욱이 덕근이 역을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투명 캐릭터를 특정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MBC ‘개그야’에서 사모님이 벌벌 떨던 ‘회장님’. 마지막 방송에서 가수 신해철이 ‘회장님’으로 ‘깜짝 출연’했지만 “실망했다”는 평이 더 많았다.
웃찾사 박상혁 PD는 “안 보이는 캐릭터가 팬들의 상상을 자극하게 되고, 더 궁금증을 유발하는 효과가 있는 걸 알게 됐다”며 “‘회장님 방침’ 코너에서 회장님은 끝까지 등장시키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장르를 넘나드는 일종의 ‘맥거핀 효과’?
‘하늘이시여’의 세현이나 ‘하얀거탑’의 문상명 교수의 경우 일종의 ‘맥거핀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맥거핀효과(MacGuffin Effect)란 관객들의 주의를 엉뚱한 곳으로 분산시켜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효과를 말한다. ‘맥거핀’이란 단어는 앨프리드 히치콕(Hitchcock) 감독이 1940년 영화 ‘해외 특파원’ (Foreign Correspondent)에서 사용한 ‘별 의미 없는’ 암호명. 인제대 김웅래 교수는 “관객의 시선을 끌어 긴장감이나 의문을 자아내게 만들려는 맥거핀효과가 최근 들어 장르를 넘나들며 이용되는 것 같다”며 “특히 가상 코미디 캐릭터는 다양한 코너에서 패러디될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각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토마스는 개그 콘서트 ‘우비소녀’에서 패러디됐고, 개그 콘서트 ‘봉숭아학당’에서 노량진 고시생 박휘순이 부르짖던 ‘창식이형’은 나중에 ‘노량진 블루스’에서 패러디, 김창식(임혁필)씨가 깜짝 등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