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북부 플랑드르에서 병원 청소를 하는 이본 얀선스(Janssens·여·57)는 주말이 되면 공작부인이 된다. 가짜 에메랄드 목걸이, 머리엔 스카프, 가짜 금화가 가득 든 손가방을 들고 하인들의 시중을 받는다. 가구업자인 남편은 도끼를 든 용병이 돼 얀선스를 호위한다.

벨기에 플랑드르의 아르스홋 마을 주민들이 중세 분위기의 옷을 입고 당시를 재연하고 있다. 맨 왼쪽이‘중세놀이’를 이끄는 이본 얀선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주말마다 이들 부부는 역사학자를 포함한 지인들과 함께 플랑드르의 작은 마을 아르스홋에 있는 700년 된 3층짜리 건물 ‘신트 로휘스’에서 중세 생활상을 재연한다. 내부는 동물가죽 카펫과 장검(長劒)들로 꾸며져 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전에는 유럽엔 없었던 토마토와 커피, 중세교회가 ‘악마의 음식’으로 규정한 당근은 먹지 않는다. 얀선스는 “2년 전부터 (우리와) 비슷한 모임 수십 개가 생겨났다. 의사·변호사도 동참하고 있다”며 “(‘중세놀이’에) 국민들이 열광하고 있다”고 말했다.

벨기에가 중세로 돌아가고 있다. 청바지 대신 갑옷을 입고, 부싯돌로 불을 붙이고, 커다란 솥단지로 음식을 해먹는 차원을 넘는다. 역사적인 전투를 재연하거나 가짜 교수형도 집행한다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유럽판이 4일 보도했다.

행동 심리학자 헤르만 코닝스(Konings)는 이 현상을 “영광스러웠던 과거에 대한 지나친 동경 탓”으로 분석했다. 중세 후반 벨기에·네덜란드·프랑스 북동부 지역을 아우르던 플랑드르는 북유럽·지중해·영국을 잇는 교통 요충지란 이점을 살려 활발한 무역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브뤼헤와 안트베르펜은 파리·런던을 뛰어넘는 경제 중심지였다. 그러나 지금의 벨기에는 이 지역의 일부만을 차지할 뿐이다.

코닝스는 “사람들은 선조들이 세계를 지배했던 중세를 재연하면서 요즘 같은 불확실한 시대에 안정감을 찾으려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