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성(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글쓰기교실 선임연구원)

학생들의 글에서 자주 눈에 띄는 문제는, 자신에게도 의미가 분명하지 않지만 근사하게 보이는 이유 때문에 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사실상 모든 사람들의 글이 가진 문제점이다. 친숙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문 영역에서 사용되거나 추상적인 의미를 가진 단어는 항상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

독자는 필자가 이해하고 의도한 의미와 전혀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있고 그 의미를 전혀 파악할 수도 없다. 필자가 의미를 정확히 알고 단어를 사용하여도 그 단어가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 특정 맥락에서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독자에게 확인을 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합리성’이란 단어를 보자. 사전에서 이 단어의 정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단어는 여러 맥락에서 약간씩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과학은 합리적이다.’는 문장과 ‘갑돌이는 합리적이다.’는 문장을 비교하자. 우선 각 문장이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다.

과학의 방법이 합리적인지, 만약 그렇다면 그 방법이 객관적이란 의미인지, 효율적이란 의미인지 분명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갑돌이의 판단이 합리적인지, 만약 그렇다면 갑돌이의 판단이 논리적인 추론의 결과인지, 최악을 생각한 선택인지, 최선을 생각한 선택인지 분명하지 않다. 이런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할 때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을 피하고 싶으면 가장 좋은 방법은 모두에게 정확히 전달될 수 있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역시 수고가 필요하다.

가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없어서 애매하고 모호한 단어로 자신의 주장을 불분명하게 전달한다. ‘애매성’과 ‘모호성’의 의미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이란 단어는 여러 의미로 전달되어 애매하다. ‘좋은’이란 단어는 얼마나 좋은 것인지 그 정도가 분명하지 않아서 모호하다. 애매하고 모호한 단어로 이루어진 주장은 독자에게 그 주장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는 인상을 줄 뿐이다. 대표적인 예가 추상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합리성’이 한 가지 사례이다. 다음 글을 보자.

“하나의 개념은 영원불변할 수 없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개념 자체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기존의 경험 방식 역시 그 이전 시대의 경험 방식과 그 자신 시대의 새로운 경험 방식의 총화이듯이, 개념 역시 고정된 하나의 실체라기보다는 쉼 없는 생성의 과정을 통해 재탄생되었다. 이러한 개념의 변화는 사람들의 관념의 변화를 반영한다. 따라서 우리는 개념의 변화 과정을 살펴감에 따라 사람들의 관념이 변화하는 양상도 살펴볼 수 있다.”

이 글의 내용은 단순하다. 사람들의 생각을 담은 개념이 계속 변화하므로 개념의 변화를 보면 생각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의 필자는 이 내용을 여러 문장으로 길게 전달한다. 이처럼 내용이 다소 장황하게 전달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필자는 여러 추상적인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으며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

첫 문장에서 ‘하나의 개념을 영원불변할 수 없고’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같은 내용의 반복이다. ‘총화’, ‘고정된 실체’, ‘생성의 과정’, ‘관념의 변화’, ‘양상’ 등 이런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단어들은 필자의 주장을 불분명하게 만들고 독자에게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된다. 이런 단어들이 글의 수준을 높여준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이다. 이 글의 가장 큰 문제는, ‘개념’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않는 데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개념’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는지 또는 이 글에서 알 수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