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스런 동물그림을 그리는 ‘퓨전 화가’ 사석원(47)이 이번엔 동양화의 정통소재인 금강산을 그렸다. 전시 ‘만화방창(萬化方暢) 사석원전’에 이런 그림 50여 점을 걸고, 작품마다 당시(唐詩)에서 따온 제목을 붙였다. ‘상팔담 흐르는 물에 진달래꽃이 떨어지네’ ‘매화는 붉고 생강꽃은 노랗네’ ‘절로 왔다 절로 가는 밝은 달아’….
그림 하나하나를 따라가는 그의 설명 또한 달착지근하거나 관능적이다. “금강산을 보면서 ‘섞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양화와 서양화를 섞고, 두꺼움과 얇음을 섞고, 남북의 갈라진 이념을 섞고.” “금강산의 단단한 화강암이 옷을 벗어 던진 골격 같았습니다.”
사석원은 평소 "여행은 의식주처럼 삶에 꼭 필요한 자양분"이라고 주장한다. 아이 둘을 끌고 온 가족이 틈만 나면 여행 다니는 여행광이다. 그런 그는 "금강산은 내가 가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최고였다"고 말했다. "2005년 1월 가나아트센터에서 금강산으로 M.T를 갔어요. 남북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30분 정도 지나니 지형이 확 달라지면서 금강산이 나왔어요. 아~ 정말, 어휴, 그런 곳은 세상 어디에서도 못 봤어요. 나무, 물, 바위 삼박자가 너무 완벽해요. 이후 계절마다 한번씩 금강산을 찾아갔는데, 갈 때마다 새롭고 진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금강산은 워낙 대가들이 즐겼던 소재라 내가 감히 그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번 보고 난 뒤 깨달았어요. 이건 도저히 그리지 않을 수 없구나."
강렬한 원색과 과감한 표현은 사석원의 이전 작품에서도 볼 수 있었던 특징이다. 이번 금강산 시리즈에서 그는 선(線)으로 동양화다움을 좇고 있다. "무의식에서 나오는 선이 동양화에서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무엇을 그린다고 의식하지 않고 캔버스가 뚫릴 정도로 붓을 내리쳤을 때 만족하게 됩니다."
두꺼운 서양화의 육질, 속에 뼈가 든 듯 단단한 붓질, 먹 하나에 물의 양을 달리해 다른 색을 내듯 한 가지 유화물감에 기름 농도를 달리해 여러 색을 내는 그의 그림에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퓨전 산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퓨전'이야말로 사석원에게 딱 어울리는 말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유화를 캔버스에 직접 짜 바르거나 동양화 붓에 묻혀서 그림을 그린다. 서양화지만 동양화의 골법용필(붓놀림법)과 기운생동을 좇는다. 색을 미치도록 쏟아 부은 그림은 물감이 앞으로 튀어나올 듯 해 평면회화이면서도 부조 같은 느낌이다. 따뜻한 봄날에 만물이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뜻의 전시제목처럼 사석원의 그림이 봄의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22일까지 가나아트센터. (02)720-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