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스타 앤젤리나 졸리(31)가 올해 세 살 난 베트남 고아를 네 번째 자녀로 맞아들였다. 졸리는 지금까지 고아원에서 ‘팜꽝상’으로 불리던 새 아들의 이름을 ‘팩스 티엔 졸리’로 새로 지어 베트남 법무부에 등록했다. 〈본지 3월16일 A28면 보도〉

마돈나는 한 번 했다. 샤론 스톤은 두 번, 앤젤리나 졸리는 세 번 했다.

결혼이나 성형수술 얘기가 아니다. 입양 얘기다. 마돈나와 샤론 스톤, 앤젤리나 졸리는 섹시한 이미지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점 외에도 입양한 자녀를 키우고 있는 면에서 공통점을 지닌 스타들이다.

영화 '툼레이더'의 섹시한 여전사로 유명한 앤젤리나 졸리는 일찍이 캄보디아에서 아들 매덕스(5)와 에티오피아에서 딸 자하라(2)를 입양하고, 지난해 동거 중인 브래드 피트와의 사이에서 딸 실로를 출산한 데 이어 최근 베트남에서 세 살 난 남자아이를 추가로 입양, 유례 드문 다인종 가족을 구성했다. 피트가 지난해 "지금은 아이가 셋이지만 내년에는 여섯이 될 테고 장차 축구팀(11명)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농담이 아니었던 셈이다.

# 할리우드 최고 유행 상품은 인스턴트 가족 

2000년 당시 남편과 함께 아들을 입양했던 스톤은 이혼 후인 2005년 또 아들을 입양했다. 전 남편 데니스 퀘이드와 사이에 아들을 두고 있는 배우 멕 라이언과, 영화감독 가이 리치와 결혼해 1남1녀를 낳은 팝스타 마돈나도 각각 중국과 말라위에서 한 살 배기 아이를 입양, '입양 스타' 대열에 합류했다.

할리우드가 때아닌 '입양 붐'이다. 다민족사회인 미국사회에서 핏줄에 대한 집착이 강한 아시아에 비해 입양이 훨씬 보편적이라는 것은 알려진 사실. 국제입양 건수만도 매해 2만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싱글인 스타들 사이에서까지 앞다퉈 입양의사를 밝히는 요즘 같은 할리우드 입양 열풍은 미국 내에서도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요즘 할리우드 최고 유행상품은 인스턴트 식품(즉석조리식품)이 아니라 인스턴트 가족(즉석에서 만든 가족)'이라는 우스갯말까지 나온다.

왜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입양이 인기일까? 흔히 '여배우들이 몸매 망가지는 게 두려워 출산보다 입양을 선호하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최근 입양 러시의 면면을 살펴 보면 그런 것도 아니다. 졸리나 빅토리아 베컴처럼 이미 출산 경험이 있거나 자녀가 있는데도 입양을 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은 스타들이 말하는 입양 계기는 '꺼져가는 생명을 구원해야 한다'는 일종의 정신적 깨달음이다. 이 경우 입양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적 지위에 따라 요구되는 책임과 의무)'의 실천으로 해석된다. 제3세계에서만 아이를 입양하는 안젤리나 졸리가 대표적인 예. 졸리에게 입양은 국경을 초월한 박애정신과 모성애의 발현이다. 그녀가 영화 '툼레이더'를 촬영하면서 촬영지였던 캄보디아의 빈곤과 기아 문제에 눈을 떴고, 현지 보육원에서 만난 10개월 된 아기에게 인연을 느껴 입양했다는 건 이제 영화보다 더 유명한 이야기다.

# 문제아였던 졸리, 21세기형 성녀로 거듭나

이후 졸리는 유엔(UN) 난민고등판무관실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수입의 3분의 1을 기부하는 등 난민 구호에 앞장서 왔다. 당시 남편이었던 배우 빌리 밥 손튼과 이혼한 후에도 졸리는 '싱글맘'의 신분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에이즈(AIDS)로 생모를 잃은 저체중아를 입양함으로써 '구원으로서의 입양'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다시금 일깨웠다.

인도적인 차원에서 국제 입양을 한 남자 배우들도 있다. 이완 맥그리거는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딸이 있지만 2004년 유엔 모터사이클로 세계일주를 하던 중 몽골에서 만난 네 살 난 고아 소녀를 입양했다. 최근 아프리카의 참상을 다룬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찍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촬영장에서 만난 고아 소녀를 양녀로 삼고 매달 생활비를 보내 주기로 했다.

보다 속물적으로 접근한다면, 입양이 스타들의 이미지 개선에 가져온 막대한 효과야말로 할리우드에서 유사 입양을 부추기는 요인이 될 법하다. 전신에 문신을 새기고 피가 담긴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문제아적인 행동으로 도마에 올랐던 졸리는 제3세계 아이들을 입양한 뒤로 테레사 수녀에 비견되는 '21세기형 성녀'로 거듭났다.

2004년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를 찍으며 제니퍼 애니스톤의 남편인 브래드 피트와 불륜관계에 빠져 사회적인 비난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을 품에 안은 채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잡힌 '브랜젤리나(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커플의 애칭)'의 가족적인 풍경은 차갑던 여론마저 누그러뜨렸다.

졸리는 인터뷰에서마다 "내겐 어떤 일보다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결국 연기가 우선이라며 아이를 갖자는 피트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애니스톤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기에 이르렀다.

지난 해 미 주간지 '피플'지가 만삭의 졸리를 아름다운 인물 100인의 대표 인물로 표지에 실은 것, 가수 제시카 심슨이 졸리가 방송에서 자신의 롤모델(본보기)이라며 "나도 내 아이를 낳기 전에 해외에서 입양을 하고 싶다"고 밝힌 것 등이 모두 이 같은 '졸리 효과'를 반영한다.


# 동기가 무엇이든 입양은 타인들에 영향 끼쳐

심슨이나 할리 베리, 제니퍼 애니스톤 등의 스타들이 이혼 후 입양을 고려하는 데에선 아이의 존재가 주는 정서적 치유의 효과도 엿볼 수 있다.

사생활의 부재 속에 인간관계의 실패를 경험한 스타들은 어느 순간 무조건적인 애정을 쏟을 대상을 절실히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입양전문잡지 '어답션 투데이'의 발행인인 제임스 로버트 페리시는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시점에서 남자가 없다고 해서 꿈꿔 오던 가정을 꾸미지 못하란 법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타들이 입양에 적극적이 된 데에는 할리우드의 때아닌 '베이비 붐'도 일조했다. 케이티 홈즈, 기네스 펠트로, 줄리아 로버츠, 새라 제시카 파커, 제니퍼 가너 등 유례 없이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산을 한 가운데, 아이를 품에 안은 이들의 행복한 모습이 주변의 부러움을 유발하고 있다는 얘기다.

세 아들의 엄마인 빅토리아 베컴도 탐 크루즈와 케이티 홈즈 부부의 딸 수리를 보면서 여자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고 밝혔고, 전 남편 브루스 윌리스와 사이에 이미 세 딸을 낳은 뒤 애쉬튼 쿠처와 재혼한 데미 무어도 최근 입양 계획을 밝혔다. 올해 서른 일곱 살인 가수 제니퍼 로페즈는 남편 마크 앤서니와 함께 임신을 시도해 온 끝에 입양 쪽으로 마음을 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엄마 스타'들이 연기와 육아를 거뜬히 병행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도 입양을 꿈꾸는 스타들의 육아 공포증을 덜어 준 것으로 분석된다.

스타들의 입양을 가능케 하는 보다 현실적인 이유로는 재력과 유명세를 들 수 있다. 일반인들은 입양을 신청해 아이를 품에 안기까지는 오랜 기다림과 많게는 3만 달러(약 2800만원) 이상의 돈이 요구되지만, 스타들의 경우는 다르다. 복잡한 입양 절차를 변호사가 대신 처리해 주는 데다가, 무엇보다 해당 국가 정부 및 입양기관이 스타들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봐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베트남에선 동거남이 있으면서 '싱글맘'으로 입양을 신청할 경우 거절당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앤젤리나 졸리에게는 이 같은 '평소 기준'이 적용되지 않았다. 졸리는 아이를 입양할 때마다 해당 국가나 입양기관에 두둑이 기부금을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타들의 입양이 항상 칭찬만 듣는 것은 아니다. 특히 마돈나는 해외 입양이 법제화되지 않은 말라위에서 단 2주 만에 속전속결로 생부가 있는 아이를 데려와 여론의 불화살을 맞았다. 방송인 샤론 오스본은 "루이비통 백을 사듯 아이를 쇼핑했다"고 비난했고 뉴욕 포스트는 칼럼을 통해 "정말 아기를 위한다면 낯선 나라로 데려올 게 아니라 아기 아빠에게 수표를 건네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앤젤리나 졸리가 세 명의 어린 자녀를 두고 최근 또 입양을 한 것에 대해서도 "입양 중독 아니냐"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국제 입양에 대해선 "국내에도 불우한 환경에 놓인 흑인 아이들이 많은데 왜 굳이 아프리카까지 가서 아이를 입양해 오냐"는 국수주의적인 불평도 터져 나온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할리우드의 입양 열풍이 국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시카고 트리뷴은 "마돈나와 졸리 가족은 우리에게 이 세상엔 아직도 수많은 아이들이 고아원이나 거리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고 지적했다. 넷스케이프의 칼럼니스트 스테이시 스미스 역시 "그 동기가 이타심이었든, 사랑이었든, 자기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든, 스타들의 입양이 타인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썼다.

앤젤리나 졸리는 한때 "지금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지만, 종국에는 아이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그녀 말처럼 할리우드 스타들의 입양이 제3세계에 대한 국제사회 전반의 관심과 지원을 불러올지는 시간이 좀더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