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도(生徒) 커플’은 용감했다. 공군사관학교 55기 서동혁(24)·장인화(23·여) 생도는 지난 14일 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소위 임관식을 거사(擧事) 시점으로 잡았다. ‘엄숙해야 한다’는 임관식에서 두 사람은 약혼식을 올렸다. 동기·후배 생도는 물론 군 고위관계자가 환호하는 가운데 입맞춤도 했다.
육사 첫 여생도 출신으로 헬기 조종사인 유세화(28·육사 58기) 대위는 올 1월 같은 헬기 조종사인 남편과 함께 충남 논산의 육군항공학교 고등군사반에 들어갔다. 군생활 내내 따라다닐 교육성적을 놓고 남편과 경쟁해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유 대위는 “결혼 후 2년간 서로 다른 부대에서 떨어져 근무했기 때문에 이제는 남편과 함께 있고 싶었다”고 했다.
'부부 군인'. 일반 회사의 '사내 커플' 바람이 군에서도 불고 있다. 여군이 4300여명으로 늘어난 지금, 직업군인 부부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군에서 부부가 모두 직업군인의 길을 걷는 커플은 861쌍이다. 전체 여군 중 결혼을 한 1188명의 72%에 해당한다. 결혼한 여군 10명 중 7명은 군인과 결혼했다는 얘기다. 2001년 국방부 조사에서 142쌍이던 부부군인은 이듬해인 2002년에 458쌍으로 3배 이상 급증했고, 5년 만에 다시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과거에는 부부군인 중 아내의 상당수가 간호장교(200여 쌍)였지만, 이제는 전투 병과 커플도 많이 생겼다. 2002년 최초의 여군 전투기 조종사가 탄생한 이래 공군 조종사 커플만 4쌍이 탄생했다. 육군 헬기 조종사 커플이나 특전사 커플도 적지 않다.
지난해엔 공군 최초로 대위 아내와 중사 남편이 결혼하는 일도 있었다. 군인끼리의 결혼은 남자가 여자보다 상관이거나 계급이 같은 경우가 보통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내가 남편보다 나이가 더 많은 ‘연상연하 커플’이다. 이들은 2002년 공군 강릉기지에 근무할 때 큰 피해를 가져온 태풍 루사 덕분에 인연을 맺었다. 관사(官舍)에 물이 차 출근조차 하기 어려운 대위(지금의 아내)를 이웃 관사에 살던 중사(지금의 남편)가 도와주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이처럼 부부군인의 경우 한 부대에서 근무하면서 호감을 갖게 돼 연인으로 발전한 경우가 많다. 힘든 훈련을 함께 하면서 쌓인 ‘전우애’가 ‘애정’으로 바뀐 경우다.
1990년대 후반 공사를 시작으로 사관학교에서 여성 사관생도를 받으면서 사관학교 캠퍼스 커플이 생겨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군인 커플은 결혼을 발표하기 전까진 교제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는 경우가 많다. 군기(軍紀)가 생명인 군 조직 특성상 사귀는 사실이 알려지면 눈총을 받을 수 있고, 또 사귀다 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96년 육군 모 부대에서 함께 근무하던 군대 한 해 위 선배와 결혼한 부부군인 박상영(여) 소령은 "결혼 발표 전까지 부대 안에선 남편과 얼굴을 마주쳐도 절대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며 "얼마나 철저하게 모른 척했는지 나중엔 '그렇게까지 할 거 있느냐'며 서로 섭섭해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때문에 부대 안에선 군인 커플들 사이의 애틋한 '첩보작전'(?)도 벌어진다. 인터넷 보급이 일반화되지 않은 전방 부대의 경우 주로 식사시간이나 일과 후 서로만의 '접선 장소'에 쪽지나 연서(戀書)를 놓아두고 찾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부부군인인 한 육군 소령(여)은 식사시간에 장교식당 모자 보관함에 한쪽이 연애편지를 담은 책을 두고 가면 다른 한쪽이 찾아가는 방식으로 서로 마음을 전했다고 한다.
사실, 부부군인으로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라는 게 이들의 말이다. 결혼을 해도 떨어져 살아야 하는 게 가장 큰 고충이다. 최근 공군에선 부부군인의 경우 가급적 한 지역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움직임도 있지만, 현재 함께 사는 부부군인은 절반도 안 된다. 육사 출신 소령 남편과 떨어져 사는 장혜선 소령(여군 40기)은 "신혼 때가 인생의 가장 달콤한 시기라고 하지만 남편은 강원도 최전방에, 나는 조치원에 근무해 두세 달에 한 번 보기도 어려웠다"고 했다. 장 소령은 "처음 여군이 됐을 때 혼자인 것 같았는데 같은 군복을 입은 남편을 만나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육아 문제도 만만치 않다. 각종 훈련과 당직이 잦은 부부군인이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이들과 떨어져 사는 부부군인도 30% 가까이 되고, 한국 평균 출산율이 1.2명인 것과 비교해 부부군인의 경우에는 0.83명이란 통계도 있다. '국방'과 '사랑'을 동시에 손에 쥐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