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범여권의 반대 기류가 심상치 않다. ‘협상 중단론’이나 ‘협상 무용론’ 등 적극적인 반대 목소리가 커지고, 노무현 정부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범여권이 ‘반(反)FTA’ 전선으로 노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어려운 대선 국면을 정면 돌파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온다.

◆김근태 “낡은 방식으로 국민 협박”

여권 대선주자 중 한 명인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지난달 의장직에서 물러난 뒤 언론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었다. 그러던 그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미FTA를 하려면 나를 밟고 넘어가라”고 강성 발언을 하고, 다음 정권으로 넘기라는 말을 했다.

김 전 의장은 “김영삼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때처럼 현 정부가 낡은 방식으로 국민을 협박하고 있고 오만하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그는 정부의 FTA지원특위위원장이었던 한덕수 총리 지명자의 국회 인준에 반대한다는 뜻도 밝히면서 “100년 전 (미국과 일본 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우리가 비통의 역사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미국 패권주의에도 책임이 있다”고까지 했다.

상대적으로 실용적 성향이라고 평가받아온 정동영 전 의장도 최근 “3월 말까지 마무리할 필요가 없고 (노 대통령) 임기 내에 협상을 끝내야 한다는 데 반대한다”고 했다. 신기남 의원은 “한·미FTA를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했고, 천정배 의원은 “아무 실익도 없다”고 했다. 열린우리당 일부와 민생정치모임(탈당파) 소속 의원들도 연일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왜 반대하나

여권에선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협상력을 높이자”는 차원에서 신중론이 나왔다. 그러나 이젠 한·미FTA 자체에 대한 반대로 돌아섰다. 왜 이럴까.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한·미FTA를 통해 ‘반노(反盧) 전선’을 형성, 통합신당의 추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한·미FTA는 진보진영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 대통령이 적극 추진해 온 것이다. 한·미FTA를 때림으로써 노 대통령과 자연스레 차별화하고, 전통적 지지층까지 결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덕수 총리 인준안까지 연계하면 인사문제에서도 확실한 결별이 가능해진다.

개성공단을 둘러싼 한·미 간 마찰도 범여권 반대의 한 이유다. 장영달 원내대표는 “개성공단이 한·미FTA의 적용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했다.

불리한 대선 판을 뒤집을 이슈로 한·미FTA를 부각시키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보수 성향의 한나라당 대선 주자들은 한·미FTA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유권자를 친(親)FTA와 반(反)FTA로 나눠 반FTA 표를 모으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야당도 반대 기류 만만찮아

한나라당은 권오을 홍문표 의원 등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소속 의원들이 반대를 주도하고 있다. 홍 의원은 “여권조차 반대하는데 우리가 왜 찬성하느냐”며 “과거 한·칠레 FTA보다 훨씬 많은 50명 이상이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이 과정에서 당 지도부와 농촌 의원, 대선주자 간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반FTA’ 기류가 강한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이 여권과 연합전선을 펼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