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에 사는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유괴된 지 나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됐다. 유괴 용의자는 24평형 아파트에 사는 20대 견인차 운전자로, 국제도시로 개발 중인 송도에 사는 사람이면 돈이 많을 것으로 생각해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인천 연수경찰서는 초등학생을 납치한 뒤 부모에게 돈을 요구한 혐의로 15일 이모(28·인천 연수구)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납치와 사체 유기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1일 오후 1시30분쯤 인천 연수구 송도동 모 상가 앞길에서 혼자 게임기를 사러 가던 초등학생 박모(8·인천 연수구 송도동)군에게 길을 가르쳐 달라며 접근했다. 이씨는 아파트 값이 비싼 송도동의 주민이면 돈이 많을 것으로 보고 범행 3일 전부터 송도동 일대에서 범행 대상을 찾았으며, 당일 유괴하려고 접근한 4~5명의 어린이 중 박군만이 “길을 가르쳐 주겠다”며 자신의 견인차에 올라 박군을 유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유괴 뒤 박군으로부터 각각 고교와 초등학교 교사로 있는 부모의 연락처를 알아냈으며, 휴대전화 녹음기로 “아빠 나 데려다 준대”라는 등의 박군 육성 녹음을 땄다. 이어 청테이프로 박군의 손발을 묶고 입을 막은 채 견인차 조수석 뒤 공간에 태우고 다녔다.

박군은 납치된 지 10시간여 만인 11일 오후 11시쯤 숨졌으며 이씨는 박군의 사체를 마대에 담아 인천 남동공단 저수지에 버렸다. 경찰은 15일 오전 저수지에서 박군 사체를 발견했다.

경찰은 이씨가 운전을 하고 다니다 조수석 뒤쪽을 보니 박군이 질식사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미리 육성녹음을 딴 것 등을 볼 때 살해했을 가능성도 큰 것으로 보고 사체 감식을 벌이고 있다.

◆협박 전화와 범행동기

이씨는 박군 부모에게 공중전화와 훔친 휴대전화를 이용해 모두 16차례 전화를 걸어 현금 1억3000만원을 요구했다. 유괴 후 1시간15분 가량이 지난 11일 오후 2시45분쯤 인천시 남동공단의 한 공중전화에서 박군 부모에게 처음 전화를 걸어 돈을 준비하라고 요구했다. 11일과 12일 오후 8시쯤에는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 나 (집에) 데려다 준대’ 등의 박군 목소리를 부모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조사 결과 이때 들려준 박군의 목소리는 박군이 숨지기 전에 녹음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박군이 숨진 뒤에도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고 9차례나 전화를 걸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13일 오전 1시40분쯤 박군의 아버지(45)가 자신이 지시한 장소에 현금 1억원이 든 가방을 갖다 놓았으나 경찰이 잠복해 있을까봐 겁이 났고, 현금 1억원이 무거워 돈을 들고 이동하는 사이 잡힐 것 같아 가져가지 않았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이씨는 24평형 집을 사면서 은행에서 1억원의 빚을 진 데다, 이 돈을 못 갚아 화가 나 마신 술값 등 유흥비로 3000여 만원을 더 날리자 이를 갚기 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인천의 2년제 대학 중퇴 뒤 4년간 자동차 정비 일을 하다가 견인차 운전을 하게 된 이씨는 견인 일감이 없어 수입이 마땅치 않자 유흥주점 등을 전전하며 사채로 빌린 돈을 탕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씨가 전화를 건 공중전화 박스 주변에 설치돼 있는 각종 CCTV를 분석해 이씨가 타고 다닌 차량 등을 알아낸 뒤 14일 오후2시10분쯤 인천 연수구 연수동 한 아파트 앞길에서 차 안에 잠들어 있던 이씨를 붙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