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은 무엇일까? 얼마 전 지난 민족 대명절인 설은 이런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고향으로 가는 길이 아무리 멀고 막힌다고 할 지라도 사람들은 길 위에 나선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질문을 해보자. 왜 사람들은 집을 떠나 길 위에 서는 것일까? 여행이란 일상과 어떤 관련일까? 영화 장르 중 ‘로드무비’는 길을 떠나는 형식을 띤 작품들을 일컫는다. 고향과 관련된 영화들이 대개 ‘로드 무비’ 형식을 띠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왜 사람들은 집을 떠나 길 위를 나서는 것일까? ‘로드 무비’는 어떤 이유에서 인생과 자주 비견되는 지 그 의미를 생각해보자.

2월 25일에 개최된 79회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중에는 [미스 리틀 선샤인]이라는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7살짜리 딸이 전국 어린이 미인 대회 출전권을 따자 전 가족이 여행을 떠나는 형식을 띤 이 작품은 전형적인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가족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낙오자들이라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실패한 강사, 어머니는 가난에 찌든 염세주의자, 쾌락주의자 할아버지, 자살 미수자인 외삼촌 등등으로 구성된 이 문제 많은 가족이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기어가 고장 난 차에 올라 탄 가족은 여행의 끝에 결국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되돌아온다. 그 깨달음은 “인생이란 고통으로 인해 더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프루스트의 말로 요약된다. 가족이란 그런 것이라는 듯 그들의 여행이 삶에 지친 관객에게 따뜻한 위안이 되는 것이다.

‘로드 무비’는 대개 인생의 질문을 지닌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영화를 지칭한다. 올 해 초 노무현 대통령이 관람해 화제가 된 배창호 감독의 [길] 역시 전형적인 로드 무비이다. 믿었던 친구와 아내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장돌뱅이 태석은 평생을 길 위에서 보낸다. 하지만 영화의 끝에 이르러 태석은 마음 속의 상처를 지우게 된다. 친구로부터 사과를 받고 아내에 대한 오해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과 같은 문예 영화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작품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이 곧 커다란 모루를 지듯 각자의 짐을 지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로드 무비’가 암시하고 있는 바는 결국 삶 자체가 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 부대끼고 사랑하고 상처 입기에 여행길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고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여행이 주로 로드 무비에서 조형되고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는 한편 ‘로드 무비’ 속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들이 대부분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이를테면 [노킹 온 헤븐스 도어]의 주인공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환자들이었고 [델마와 루이스]의 주인공인 두 여성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을 대표한다. 황정민이 주인공을 맡았던 [로드 무비]의 동성애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생은 영화나 소설과 달라 한 번 지나간 길을 되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여행은 언제나 돌아올 곳을 염두에 둔 잠시의 일탈이다.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표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젊은 이들의 방황을 그린 작품들이 선택한 로드 무비 형식은 길이 곧 자아정체성의 확립을 매개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의 물리적 육체로 일회적으로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유비적으로 체험해보는 것이 곧 여행이며 여행을 다룬 영화들이다. 결국, “로드 무비”는 삶에 있어서의 자기 위치, 자아 정체성을 찾는 과정의 압축으로 요악된다. 길이 곧 인생이고 인생이 곧 길 위에 있기 때문이다.

더 생각해 볼 문제

▲자아 정체성과 로드 무비의 연관성을 구체적 작품을 통해 제시해보자.

▲로드 무비는 영화 뿐 아니라 소설에서도 매우 오래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왜 길 위의 삶을 그리는 작품들이 많을까? 그 이유를 각자 제시해본다.

▲“돈키호테”같은 고전 역시 로드 무비 형식과 닮은 부분이 있다. 16세기 세르반테스가 쓴 이 소설은 매우 중요한 인문학적 가늠점이다. 그 의의와 의미를 조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