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교과 논술에서 언어 논술, 수리 논술, 과학 논술이라는 구분은 다분히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율 배반적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통합 교과 논술을 대비해야 하는 수험생을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교과의 통합 과정에는 중심을 차지하는 교과 영역이 엄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다. 최근 여러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인문계 논술과 자연계 논술의 성격이 뚜렷이 구분되고 있는 마당에 통합 교과 논술을 그저 통합 교과적 관점에서만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무책임한 것일 수 있다. 따라서 통합 교과 논술에서 다루어지는 문항의 유형들을 통해서 중심에 놓인 교과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나아가 출제 유형별 대비 방법을 중심 교과와 연계해 모색해 보는 것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언어적 사고, 수리적 사고, 과학적 사고가 각기 조금씩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보아도, 언어 논술, 수리 논술, 과학 논술 등의 구분은 일단 통합 논술을 대비하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중심 교과를 바탕으로 한 통합 논술의 요소들을 차례로 살펴본다.

>> 언어적 사고와 논술

인간의 이성적 능력을 가리키는 '로고스(logos)'라는 말은 본래 '말하다, 논증하다'라는 뜻의 'Legein'이라는 그리스 어 동사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이는 인간의 이성적 능력과 언어적 능력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통합 논술에서는 언어적 자료(텍스트)뿐만 아니라 도표, 그림, 통계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이 제시된다. 그런데 그 형태와 성격에 상관없이 논술의 텍스트는 일단 언어적인 형태로 가공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언어적 요소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술 문항으로 출제되는지 2007학년도 고대 수시 2학기 인문계 1번 논제를 사례로 살펴보자.

위 제시문들은 '의사결정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것이다. (가)의 요지를 밝히고(200자 이내), (가)와 (다)의 견해를 비교하고, 모든 제시문을 참고하여 '의사결정의 기준과 방법'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논술하시오.



윗쪽 그림은 위의 문항을 그림으로 나타내 본 것이다.

그림을 보면 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I)과 (II)의 과정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특히 (II)에서 '통합 교과적' 성격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서로 다른 영역들을 한 가지 영역의 관점을 통해 비교 가능한 관계로 재구성하는 이른바 '지식의 영역 전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II)의 작업을 완수하는 데는 '연관 관계 파악'과 '연결' 및 '통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정밀한 독해, 비교, 대조, 논증 등의 언어적 사고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처럼 제시문 간의 연관 관계를 파악하고 논지 및 핵심 개념을 연결하고 통합하는 과정은 결국 그 자체가 언어적 사고를 통해야 가능한 것이며, 논술 행위는 이러한 언어적 사고를 원고지에 구체화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논술의 언어적 요소인 비교, 대조, 분석, 요약, 설명, 비판, 예시 등은 표면적으로는 서술의 방법을 뜻하는 말이지만 동시에 사고의 과정을 가리키는 개념이기도 한 것이다.

>> 논제에 나타난 언어 논술의 요소

본격적인 통합 논술로 규정하긴 어렵지만 통합 논술로 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낸 2007학년도 정시 논술의 논제들을 보더라도 언어적 요소들이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정리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러면 이들 중에서 다수의 대학들이 채택한 몇 가지 유형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비교하기, 대조하기

통합 논술에서는 하나의 논제 아래에 다양한 분야, 다양한 관점, 다양한 형태의 자료들이 제시되기 때문에 각 자료들 간의 비교 혹은 대조를 직접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표면적으로는 자료들 간의 연관성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들은 분명히 특정한 주제로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자료들 간의 공통된 주제를 기준으로 해서 자료들이 주제에 대해 각기 어떤 입장이나 관점을 취하고 있는지를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제시되는 자료의 수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비교와 대조의 방법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언어 논술, 나아가 통합 논술에서 비교와 대조의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 문항들은 거의 출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서울대 2008학년도 정시 모집 논술고사 2차 예시 문항 인문 계열 2번과 같은 문항들은 통합 논술에서 출제자가 이미 상정하고 있는 비교와 대조의 구도를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이다.

2) 문제점 찾기, 대안 제시

통합 논술에서는 새로운 지식의 창출 능력을 중요한 평가 항목으로 다룬다. 따라서 제시된 자료들 속에 나타난 현상 또는 상황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문제점을 파악하고 그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문항들이 자주 출제된다. 이러한 문항들을 해결할 때는, 일반적으로 〈현상 → 문제 인식 → 원인 분석 → 해결 방안 제시〉의 순서를 따르게 된다. 이때에는 제시된 자료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문제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기본이 된다. 문제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적절한 대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유형의 문항들은 대안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그 완성도가 결정된다. 하지만 많은 학생들은 문제에 대한 대안 제시를 매우 어렵게 생각한다. 이것은 배경 지식과 독서량의 부족도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대안은 무조건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경우, 제시된 자료 속에 이미 대안이나 그에 대한 힌트가 주어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제시된 자료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분석하고 그 안에서 실현 가능한 대안들을 구상해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한편 대안을 제시할 때에는 가능한 구체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어 '좋은 사회를 만들자.'라는 대안은 일반적이고 막연하여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이보다는 '기본적 평등권이 보장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와 같이 구체적인 것이 좋다.

3) 비판하기, 반론 제시

인간의 사고는 끊임없는 반박과 재반박의 변증법적 과정이며, 논증은 기본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결과이다. 따라서 모든 논증에는 비판과 반론의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비록 논제에 '반박하라' 혹은 '비판하라'는 명시적 지시가 없더라도 제시된 자료들에 담겨 있는 내용들에 대해 나름대로 비판하고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자기 주장의 한계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고 또한 예상되는 반론에 대한 재반박을 통해서 보다 객관적인 논거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판과 반론은 철저히 제시된 자료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때문에 비판이나 반론을 할 때에는 먼저 자료들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주장과 논거를 가능한 한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 제시된 자료들을 통해 반박할 기준을 확립하여 놓지 않으면 반박해야 할 범위가 모호해질 뿐만 아니라 논점 자체를 잃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제시문들 간의 논리적 모순을 반박해야 할 경우에는 비교와 대조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제시된 자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더욱 중요하다.

4) 논증하기

논술에는 주관적 생각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논술이 주관적인 글은 아니다. 오히려 논술은 철저히 객관적이어야 한다. 주장은 객관적 근거들을 활용할 때 타당성을 얻는다. 이렇듯 내용과 형식에 적절한 근거들을 동원하여 자신의 주장을 객관화하는 과정을 논증이라 한다. 그런데 특정한 주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라는 것은 논술에서 궁극적인 논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논증은 논술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통합 논술에서는 논증의 과정이 개방적이지 않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즉 문항 자체가 이미 단계적 논증의 과정으로 구성되거나, 제시문 안의 논거만을 활용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대학의 채점 기준을 보면 제시된 자료들의 적절한 활용 정도를 매우 비중 있게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시문에서 논거를 발견하고, 이를 활용하여 논증하는 글쓰기 연습을 평소에 충분히 연습해 두어야 한다. 이 때 논리적 사고가 부족한 학생들이 흔히 범하는 성급한 일반화, 연민, 권위, 군중에의 호소 등과 같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통합 논술도 예전의 논술과 다를 바 없이 다양한 언어적 사고와 요소들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통합 논술에 대비하기 위해서 독해력과 표현력 그리고 논리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언어 능력을 키우기 위해 우선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통합 논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무작정 통합적 사고만을 외치며 통합 논술을 준비한다는 것은 공허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