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은 1천분의 1초 싸움이다. 둥근 배트와 원형의 볼이 충돌하는 1천분의 1초를 어떻게 활용하는 가에 따라 타격의 질이 달라진다. 그 곳에 홈런의 비밀도, 땅볼의 한 숨도 있다. 위대한 타자가 되기 위해서는 알게 모르게 물리학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배트와 힘의 관계를 알아본다.
타구는 이론상 45도 각도로 포물선을 그릴 때 가장 멀리 나간다. 나는 볼에 중력만 작용하면 포물선을 그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바람의 방향과 속도, 공기의 저항 등이 있다. 그래서 타자는 45도 보다 약간 낮은 30~40도 각도를 유지하려고 한다. 타구가 바람과 반대 방향이면 체공시간이 길수록 불리하다. 따라서 더 낮게 쳐야 한다. 바람과 같은 방향이면 체공시간이 길수록 유리하다. 이 경우 높은 각도를 유지하는 게 좋다. 그러나 무게 142~148g 둘레 231mm의 원형의 볼을 둥근 배트로 정확하게 가격하는 것은 힘들다. 계산상으로는 시속 140km 이상의 스피드볼이면 타격이 불가능하다. 투수와 타자 사이의 거리는 18.44m. 그러나 투수가 상체와 팔을 홈쪽으로 최대한 끌어내 볼을 뿌리기에 실제 비행거리는 16.44m 정도다. 볼이 타자 앞에 도달하는 시간은 불과 0.4초 정도. 타자가 볼을 본 순간에 이미 10m 지점에 와 있다. 수준급 타자의 반응속도는 0.2초 가량. 따라서 남은 0.2초 전후에 구질을 판단해 타격을 해야 한다.
배트에서 스위트스팟(sweet spot)은 공이 가장 효과적으로 맞는 부분이다. 즉 볼을 가장 멀리 보낼 수 있는 배트의 위치다. 모든 사물은 부딪치면 진동을 한다. 이 진동은 물체에 퍼지며 위 아래로 파동을 일으킨다. 그런데 그 파동이 서로 작용해 없어지는 부분이 있다. 이 지점이 스위트 스팟이다. 이 지점으로 타격을 하면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때려도 손 울림이 없다. 또 이런 타격 때는 배트의 에너지가 진동으로 인해 소모되지 않아 전체 힘이 볼에 실린다. 전설의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스위트 스팟 타격 능력이 탁월했다.
야구 배트에서 운동 에너지를 극대화 하는 지점은 위쪽 끝에서 15~20cm 부근이다. 시드니대학 로드 크로스 교수의 실험에 의하면 방망이의 끝에서 17㎝ 지점에 공을 맞히면 큰 힘이 실렸다. 프로선수들은 스위트 스팟을 타격을 통해 감각적으로 찾는다. 간단하게 알려면 배트를 수직으로 세워 헤드 부분을 프라스틱 망치로 두드려 손울림이 없는 지점을 찾으면 된다.
'타격의 순간에 힘을 실어라.'타격코치들이 선수들에게 흔히 하는 말이다. 이것은 배트와 볼이 접촉하는 순간을 오래 유지하라는 뜻이다. 스윙한 배트와 비행해온 빠른 볼이 부딪치는 시간은 길어야 1천분의 1초에 불과하다. 즉 투수가 던진 시속 150km의 빠른 볼을 스윙 스피드 150km로 칠 때 배트에 볼이 머무는 시간은 0.0005~0.001초다.
이 시간을 얼마나 길게 끄느냐에 따라 타격의 질이 달라진다. 이 시간이 길수록 볼에 전달되는 운동에너지가 크다. 수식을 세우면 '방망이의 힘X시간=볼의 속도X볼의 무게'가 된다. 프로야구 대표적인 홈런타자인 이승엽 심정수 박경완 마해영 등이 타격 순간에 힘을 싣는 명수들이다.
KIA의 왼손타자인 심재학은 방망이 100개가 있어야 한 시즌을 날 수 있다. 때로는 진동이 큰 부분, 즉 손잡이쪽으로 치우쳐 볼이 맞을 때도 있다. 이런 경우 심재학의 힘과 볼 스피드 사이에서 배트는 부러짐으로 하소연을 한다.
타구 비거리는 투수가 던진 볼의 속도 및 무게, 그리고 타자의 배트의 속도 및 무게가 클수록 길어진다. 운동량은 질량X속도이다. 그래서 배트는 무거워야 홈런생산에 유리한다. 또 긴 게 장타를 치는 데 좋다.
한 때 홈런타자들은 크고 무거운 배트를 선호했다. 그러나 큰 배트는 스윙이 늦어지고 정확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그래서 요즘은 자기의 키와 몸무게 맞는 것을 선호한다. 한국인 타자는 대개 900g 이하의 배트를 쓴다. 1920년대 미국에는 1700g 배트가 많았다. 그러나 베이브 루스가 1494g의 방망이로 홈런신기록을 세우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깬 행크 애런의 방망이도 몇백그램이 가벼워진데 이어 최근의 대표적 홈런타자인 켄 그리피 주니어(신시내티)가 34인치에 900g, 배리 본즈(샌프란시스코)가 역시 34인치에 858g을 사용하고 있다. 이승엽도 2003년 56호로 아시아 홈런신기록을 세울 때는 930g 배트를 썼으나 일본에서는 900g 방망이로 승부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의 방망이 규정은 간단하다. 배트는 길이 106.7cm 이하, 가장 굵은 부의 지름이 7cm이하로 돼 있다. 또 무게는 제한이 없으나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배트중 외국인 선수들은 큰 것을, 국내 선수들은 작은 것을 선호한다. 그러나 길어도 1m가 안되고, 짧아도 84cm다. 박찬호의 도우미를 선언한 프랑코(뉴욕 메츠)가 삼성에서 뛸 당시 36인치(91.4cm) 배트를 휘둘렀다. 메이저리그 타격왕에도 오른 그는 긴 방망이 덕분에 상대적으로 아웃코스에 강했다. 현대에서 뛰었던 퀸란은 34.5인치로 길었다.
한국인 선수는 길어야 34인치다. 장원진(두산) 김한수(삼성) 김재현(SK) 등이다. 짧은 배트는 발이 빠른 선수들이 주로 사용한다. 삼성 코치인 김평호가 기습번트 등 주력으로 승부할 때 32.5인치를 사용하는 등 1,2번 타자들이 주로 짧은 배트를 쥔다. 하지만 요즘의 프로선수들은 작아야 33인치다. 정수근(롯데) 정근우(SK) 이종욱(두산)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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