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디자인이 만난다.
민중의 정서가 담긴 민요의 맛을 현대시로 되살려온 시인 신경림(72)씨와 독창적 한글 서체 폰트를 개발해온 시각디자이너 안상수(55·홍익대교수)씨가 손잡고 새로운 형식의 시집을 내놓는다. 시인이 육필로 쓴 시의 이미지를 한글의 조형성으로 형상화하는 시집을 내년 초 출간하기 위해 최근 두 사람이 공동 작업에 들어갔다.
충북 충주가 고향인 신씨와 안씨는 3일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를 찾았다. 신경림 시인의 대표시 ‘목계장터’ 시비가 세워진 목계나루터에서 두 사람은 새로 만들 시집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치로 변해/ 짐 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시 ‘목계장터’ 전문)
시인이 1976년 발표한 시 ‘목계장터’는 현재 고교 문학교과서에도 수록된 한국인의 애송시다. 흔히 ‘떠돌이로 살 수밖에 없는 민중의 애환을 노래했다’는 감상평이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시인은 목계나루터에서 “유신 시대의 암울한 상황 속에서 살던 내 심경을 노래한 것”이라고 밝혔다. “1975년인가 김지하 시인이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은 뒤 나와 평론가 염무웅이 강원도 원주의 김지하 가족을 위로한 뒤 돌아오다가 목계나루터에서 시를 한 편 떠올렸어. 하지만 이런 시대적 은유를 몰라도 되지… 시는 그냥 시니까”
목계나루터는 이제 흔적만 남아있지만, 1950년대까지만 해도 전국 각지의 생산물이 오고가던 물류 집산지였다. 서울에서 소금배나 새우젖배가 오면, 충청도와 강원도, 경상도의 쌀과 콩, 담배를 실은 달구지가 몰려와 물물교환이 이뤄졌다. "흥청거리는 목계장터에는 색싯집도 많았어. 정월에는 각 지역 대표들끼리 줄다리기 시합도 열렸지"라고 시인은 옛날을 떠올렸다. 평론가 유종호, 전 외무장관 홍순영씨와 함께 충주고 문예반을 이끌었던 신 시인은 "우리는 버스를 타고 목계나루터까지 와서 술을 마셨지. 홍순영이는 나중에 정신을 차려 문학을 안 하고 공부를 잘 했으니까 출세했지."라고 말했다. 목계나루터는 올해부터 충주시의 문화마을로 지정됐고, 정월 대보름을 맞아 4일 시인이 참여한 가운데 충북 민예총 주관으로 굿판과 쥐불놀이 등이 벌어졌다.
신경림 시인의 육필시집 디자인을 맡은 안상수 교수는 올해 독일 라이프치히시가 주는 구텐베르그상 수상자로 선정된 국제적 디자이너다. "시인이 이미 써놓은 육필원고를 싣기보다는 시인을 술자리에 모셔서 흥이 돋으면 친필로 시를 새로 쓰게 하면서 천천히 1년 정도 작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농익은 시인의 인생을 최대한 담아내도록 디자인하겠습니다."
▲ 신경림 시인과 안상수 디자이너가 만났다. 충주 목계나루터에서. 그리고 이야기를 나눈다. /채승우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