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태릉고)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2004년 9월 노던 밸리(Northern Valley) 공립 고교에 10학년으로 입학했다. 언어 장벽도 문제였지만 여러 면에서 한국과 전혀 다른 교육방식에 적응하느라 처음 1년은 정신 없이 지나갔다. 수업이 끝난 후 1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매일 새벽 2시까지 숙제하고 복습 위주로 공부했다.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오전 7시40분부터 오후 2시40분까지 수업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면이 한국과 아주 달랐다.
과목수가 한국의 13과목에서 6과목 정도로 줄어 편했지만 과목당 공부의 깊이가 굉장히 깊었다. 매 과목마다 열흘에 한번꼴로 시험을 보니 한눈팔 새가 없었다.
수업시간에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체크해 두었다가 방과 후 'extra help' 시간에 선생님을 찾아가서 물으면 친절히 가르쳐 줬고, 문제까지 추가로 주셨다. 어떤 선생님은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주었다. 영어나 역사 수업은 발표와 토론이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자기표현을 잘 하는 게 중요했다. 만약 발표자료를 베껴오면 인터넷 사이트(tur nitin.com)에 의해서 완벽히 체크되기 때문에 보여 준 사람까지 처벌을 받았다. 과학은 2주마다 한번꼴로 실험을 하고, 그걸 리포트로 써서 냈다. 또 한국에선 과목마다 수많은 참고서나 문제집이 나와 있는데 미국에서는 SAT나 AP 시험 문제집 이외에는 이런 유의 책들을 서점에서 찾아 볼 수 없다. 현지에서 학원에 다니는 한국 아이들이 미국인의 눈에는 기이하게 비쳐졌다.
가장 힘든 과목은 미국사였다. 세계사는 10학년 때 ESL로 배웠는데 교과서가 너무 재미있어서 빨리 읽을 수 있었고, 한국에서 공부한 세계사 지식이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러나 11학년 미국사는 공부 방식이 한국과 완전 달랐다. 리포트, 연구논문, 발표 등 공부의 양이 엄청 났다. 너무 다급해서 한글로 된 미국사책을 빨리 마스터하고 교과서를 통해 예습, 복습을 병행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요구하는 논문은 완전 달랐다. 우선 매주마다 본인이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각각의 지역뉴스, 미국뉴스, 세계뉴스를 골라 1~2단락으로 요약해 써오도록 하고 발표를 시켰다. 그리고 중간 연구 논문으로 어떤 시대에 본인이 살았다고 가정하고 1주일치 일기를 써오라고 했다. 기말 연구 논문으로는 관심있는 한 인물을 골라서 조사하여 인물 리포트를 써오라고 했다. 물론 참고 서적과 인용 페이지를 붙이라고 했다.
일상 회화에서는 미국 친구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수학, 과학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내 이름을 많이 불러주셔서 그런지 점심 시간에 숙제를 도와 달라는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도와주면 '고맙다'고 하면서 점심을 사주거나 어떤 애는 돈을 주고 갔다. 돈을 줄 때에는 너무나 황당해서 안돼(Never)라고 말하면서 다음부터는 숙제 도움을 안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제안을 했다. 숙제를 도와줄 테니 대신 너는 내가 가르쳐줄 때 잘못된 표현을 기억해서 고쳐주고 수업시간 발표 때도 마찬가지로 서툰 것을 기억해서 나중에 지적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해서 미국 친구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혼자 홈스테이하기 때문에 등하교 때 이외에는 교통편이 없어서 매우 불편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5명이 2주에 한번 토요일 아침 9시에 지역 도서관에 모여 스터디를 1년 이상 했다. 어려운 문제들은 서로 토론하고 잘못 이해한 부분은 지적해줬다. 10학년 때부터 학교대표로 수학, 물리, 엔지니어링 경시대회에 나갔고 물리는 3등, 1등을 했다. 봉사나 과외활동은 교통편이 없어서 학교 카운셀러에게 상담해 방과 후 교내에서 부진한 학생 과외로 대신했다.
노력한 끝에 드디어 존스홉킨스(Johns Hopkins) 대학에 합격했다.(early decision) 고교시절 3년 동안 모두 'A'를 받았고 평점은 4.2에서 4.61, 4.7로 계속 올라갔다. 뇌과학(Brain Science)을 전공하여 이 분야를 로봇, 기계, 전자 쪽에 결합해보고 싶은 것이 내 소망이다. 연 4000만원에 달하는 비싼 대학 등록금이 걱정이지만, 고교시절 3년간 한국에서 나를 묵묵히 지원해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대학생활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