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점점 네모형이 되는 것 같아요. 재판하면서 방실방실 웃을 수는 없잖아요. 무표정하게 계속 있게 되니까 여(女) 판사들 얼굴이 점점 비슷해져요.” “밤새워서 일하는 판사도 많고 다들 열심히 하는데 최근 몇 개 사건 때문에 사법부 전체 신뢰가 떨어진 거 같아 속상해요.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열심히 하면 국민들이 법원에서 하는 일을 전적으로 믿어주는 날이 오겠죠.” 지난 21일 새로 임명된 여 판사는 사법연수원을 갓 졸업한 예비판사와 예비판사 2년을 마친 신임판사를 합쳐 104명으로, 전체 판사 187명의 절반을 훌쩍 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 판사의 비율은 한 자리 숫자였지만, 올해는 20%에 육박했다. 사법부가 여풍(女風)에 휩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서울중앙지법 소속의 신임 여판사 4명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2년간 예비판사 생활을 한 이들은 여 판사이기에 좋은 점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여 판사들이 조정(調停·양쪽 당사자가 화해하도록 중재하는 절차)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당사자들도 쉽게 마음을 여는 것 같아요."(이수진·28) "법정 분위기가 좋다고도 해요. 개인차는 있겠지만 여 판사가 재판장이면 진행을 부드럽게 한대요."(이지영·30) "성폭력 범죄는 과거에는 형(刑)이 낮았는데, 요즘은 시대가 바뀌고 여 판사가 늘어나서인지 형이 엄격해졌죠."(현낙희·27) "사건 청탁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요. 일단 여 판사들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살 수 있는 술과 골프에 관심이 덜하니까 그런 것 같아요."(송인경·31)
이들은 여 판사에 대해 사람들이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여 판사라고 하면 '못 생겼다', '무섭다', '안경을 썼다'고 상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현 판사는 "시아버지 친구분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며 결혼식장에 오셨는데 '하나도 무섭지 않다'며 놀라셨대요. 판사라면 형사재판장을 생각해서 무서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여 판사로서의 고충도 있다고 했다. "사법연수원에서 짝을 만나지 않으면 결혼하기도 힘들어요. 여 판사는 인기가 없대요. 어떻게 판사 부인·며느리를 모시고 사냐는 거죠." 실제 이들 4명의 여 판사 중 기혼인 3명은 모두 연수원에서 배우자를 만났다.
이들은 "2년의 예비판사 경험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며, 그 예로 지난 21일 판사 임명식을 들었다. 이수진 판사는 "예비판사들은 옷차림이 좀더 자유분방했지만 2년간 예비판사생활을 한 신임법관들은 그렇지 못해서 딱 구분이 됐다"고 했다. 실제로 신임 여 판사들은 이날 한결같이 검은 스타킹을 신었는데, 예비판사들은 살색 등 다양한 스타킹을 신어서 쉽게 구분이 됐다. 아무래도 판사 생활을 하면 좀더 조심하고, 보수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지난주부터 정식 판사로 재판을 하고 있는 이들은 최근 '석궁테러' 등 사법 불신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이지영 판사는 "연수원 시절 법정에서 방청할 때 피고인을 보면서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어 이렇게 선고한다'며 자세히 설명하던 부장판사님이 생각난다"며 "그런 작은 노력들을 쌓아가면 언젠간 사람들이 법원이 하는 일을 믿어주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송 판사는 "법원은 바른 결론을 내려주는 것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을 감싸 안아주는 것도 중요하다"며 "물론 판사들의 업무부담은 늘겠지만 당사자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은 정확한 결론을 위해서도, 또 당사자를 위로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했다. 또 애정을 갖고 법원을 봐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현 판사는 "일반 사람들은 판사가 1주일에 이틀 정도만 재판하고 나머지 날은 논다고 생각하는데, 재판 시간보다 기록보고 고민하고 판결문 쓰면서 보내는 시간들이 더 많다"며 "우리도 노력하겠지만 국민들도 사법부를 믿고 지켜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판사들은 최근 한 부장판사가 "대법원장이 사법불신에 일부 책임이 있다"며 사퇴를 요구한 일에 대해서는 "그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끼리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