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사이 외국 국적의 살인사건 용의자 두 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2월 1일 경기도 안산에서 중국인 근로자가 토막살인사건 용의자로 검거됐다. 2월 7일 경기도 평택에서는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교포가 경찰에 붙잡혔다. 두 사건 모두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이고, 망치로 사람을 때려 숨지게 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토막살인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일명 ‘국경없는 마을’ 일대는 범인이 잡힌 지 1주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썰렁했다. ‘국경없는 마을 설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스산한 바람에 펄럭였다. 거리에서는 중국어 등 외국어로 쓰여진 간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정육점에는 각 나라말로 고기 부위 이름과 가격이 붙어 있었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공인중개사는 초급 중국어책을 보며 중국어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원곡동은 한국 속 작은 외국이었다. 안산역에서 원곡본동 사무실까지 이어진 상가 거리 곳곳에서 국제전화를 걸 수 있는 전화기가 나란히 놓여 있는 콜센터도 볼 수 있었다. 부동산 입구에는 보증금 100만원, 월세 20만원짜리 원룸 등을 소개하는 광고전단이 잔뜩 붙어 있었다.
- 요즘 이 거리를 다니는 외국인 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평소엔 평일 저녁에도 사람들로 가득 찼던 거리가 요즘엔 주말에도 인적이 드물다. 경찰이 토막살인사건 수사에 나서 집집마다 탐문 수사를 벌이면서 괜히 ‘불똥’이 튈까 두려운 불법체류자들이 이곳을 떠나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이곳 원곡본동에 등록된 외국인은 8700여명이다. 한국인 2만여명의 43%에 해당하는 규모다. 동사무소는 통계에 잡히지 않는 불법체류자까지 감안하면 원곡동 일대 외국인은 20여개국 2만명을 훨씬 넘어설 것으로 추산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올해 100만명을 넘어섰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합법적인 외국인 체류자가 89만5000명, 법무부가 추산한 불법체류자가 20만8000명이다. 2003년 외국인 체류자는 불법체류자를 포함해 80만명 가량이었다. 외국인 체류자 수가 늘면서 범죄 건수도 늘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1988년 국내에서 발생한 외국인 범죄는 모두 999건이었으나, 2004년에는 12배가 넘는 1만2554건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강력범죄 역시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는 불법 송금, 위장 결혼 수준이던 외국인 범죄 유형이 최근에는 살인, 마약, 강간 등 강력 범죄로 바뀌고 있다. 주한 외국인과 한국인의 접촉이 늘면서 내국인 피해자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 ▲ 한국인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검거된 중국인 손 모씨에 대한 현장 검증.
- 중국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에서 한국으로 온 외국인 범죄도 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물론 프랑스까지 놀라게 했던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 영아 살인사건은 부모인 프랑스인 부부가 범인으로 밝혀졌다. 1월에는 주한미군 G모(23)씨가 서울 마포구 동교동 주택가 골목길에서 60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검찰청에 접수된 외국인 범죄는 2003년 9338건, 2004년 1만2831건, 2005년 1만3584건이고, 2006년에는 8월 기준 1만2136건으로 외국인 범죄가 급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내 외국인 범죄의 30%는 안산, 평택 등 경기도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그냥 먹으면 느끼하니까 콩국에 같이 먹어요.”
주인 할머니가 달콤한 콩국을 떠다 줬다. 안산 원곡동 만두는 세 개에 천원이다. 중국식 만두는 콩국에 같이 먹어도 목에 느끼한 맛이 남았다. 혼자 식당을 찾은 외국인이 만두 세 개로 한 끼를 해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외국인을 상대로 만두를 파는 60대 여성은 “무섭다”는 말부터 꺼냈다. “칼 들고 다니는 사람들 여럿 봤어. 한 2~3년 전부터 갑자기 늘어난 것 같아. 장사도 무섭지. 잘못 건드리면 괜히 화 당할까 봐 조심조심 하고 살아.”
마산에서 하던 다방을 접고 원곡동에 다방을 차린 이모(50)씨는 “전국에서 원곡동 커피값이 제일 비싸다”고 말했다. “전국 다방 커피값이 대부분 1500~2000원인데, 원곡동은 3000원이에요. 그 얘기 듣고 올라왔는데, 장사하기 너무 무서운 동네에요. 마산에서 장사할 때는 손님이 없으면 소파에 누워서 잠도 자고 그랬는데, 여기선 그러다 누가 들어와 칼로 찌르고 갈까 무서워서 손님이 없으면 오히려 불안해요.”
이발소 등의 실내 설비 공사를 하는 손모(55)씨는 “중국인이 싸우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고 말했다. “그 사람들은 떼로 몰려 다니면서 싸우고, 싸우면 무조건 칼이 나와요. 긴 쇠파이프도 나오고요. 이 동네에서는 사람 죽이는 데 300만원, 발목 자르는 데 50만원 한다는 섬뜩한 얘기도 오가요. 그러니까, 중국 사람이랑은 절대 부딪치면 안 돼요. 연락망이 다 짜여 있어서, 한 사람 잘못 건드리면 동시에 우르르 몰려와 꼭 복수하거든요.”
- 옌볜에서 왔다는 한 조선족 상인(56)은 “옌볜에서 유명한 깡패들은 한국에 들어와 안산과 가리봉에 있다”고 말했다. “조직이 몇 개 있는 것 같아요. 주로 임금 체불하는 한국인 사장 찾아가서 돈 대신 받아주고 수수료로 10%를 받는다고 했어요.”
토막살인사건에 대해 묻자 조선족 상인은 “경찰이 수사 나와도 중국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 ▲ 평소엔 인파로 넘치는 외국인타운은 토막살인사건 이후 한산해졌다.
- “괜히 복수 당할까 무서워서 그렇죠. 중국 사람은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마는 사람이에요. 이번 토막살인사건 같은 경우에 중국에선 범인 잡기도 쉽지 않아요. 중국에선 사람 죽이고 잘 파묻지도 않아요. 땅이 워낙 넓으니까, 사람 안 다니는 길거리에 그냥 던져 놔도 쉽게 찾을 수 없거든요.”
국내에서 발생한 전체 외국인 범죄 중 중국인에 의한 범죄가 2005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2005년 외국인 범죄자는 1만3584명으로 이 중 7040명(51.8%)이 중국인이었다. 2000년 1980명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외국인 범죄자는 미국인이 가장 많았으나, 중국인 노동자가 한국으로 유입되면서 중국인이 1위의 불명예를 안게 됐다.
2000년부터 5년간 중국인에 의한 범죄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이 25.8%(4327건), 상해와 폭행이 3%(510건)로 폭력범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미국인에 의한 범죄는 교통범죄 비중이 가장 높았고, 러시아인에 의한 범죄는 절도범죄, 타이완인에 의한 범죄는 사기범죄가 가장 높았다.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는 40대 조선족은 불법체류자라고 했다. 그는 “출입국(사무소)에서 단속 나왔다고 하면 길거리에 중국인은 한 명도 안 보인다”고 했다.
“조직이 안 갖춰져 있으면 불가능하지요. XX(한족을 지칭하는 속어)들은 연락망을 잘 갖춰놓고 있는 거예요. 조선족은 조선족끼리 잘 뭉치지 않는데, 한족은 정말 잘 뭉쳐요. 안산 유명해요. 무서워서 안산 못 오겠다는 조선족도 많고요.”
- ▲ 고국으로 국제전화를 거는 외국인들.
최소 두 개 이상의 중국인 조직이 활동 중인 것으로 보였다. 이들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할 순 없었다. 인근의 한 사업가는 “아무 중국인이나 붙어서 시비를 걸어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밀린 월급을 못 받게 될 경우, 조직에 ‘신고’를 하고 조직이 출동해 임금을 대신 받고 수수료를 챙기는 방식으로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조직은 ‘협상전담팀’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성인오락실을 운영하는 주인은 “데리고 있던 중국인이 근무 중 다리를 다치자 두 명의 중국인이 나를 찾아왔다”고 말했다. “덩치 좋은 사람 두 명이 찾아와서는 합의금으로 250만원을 달라고 했어요. 제가 병원 치료 다 해주고 50만원을 주겠다고 했는데, 그냥 돌아가더니 노동부에 신고를 했더라고요.”
안산 원곡동 일대 성인오락실 손님은 상당수가 중국인이다. 주변에선 게임 기계 50대를 갖춘 성인오락실의 하루 매출이 많을 때는 500만원, 적을 때도 200만원을 넘는다고 말하고 있다. 오락실 주인은 “중국인은 도박을 좋아해 오락실로 가고, 인도네시아?綸?사람은 PC방에 가서 인터넷으로 가족과 연락도 하고, 게임도 한다”고 말했다.
원곡동에는 노래방 등에 여성 도우미를 공급하는 ‘보도방’이 10개 이상 있다고 한다. 대부분 한국 사람이 운영하지만 조선족 등을 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보도방에 소속된 여성은 한국인과 조선족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노래방에서는 전문 절도범이 훔쳐온 장물 교환도 이루어진다. 손모씨는 “노래방에서 보석이 반값에 거래되는 것도 본 적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산에는 전문 집도둑이 몇 팀 있다”며 “안산에서 출발해 전국으로 출장을 나간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절도단을 조직해 전국 아파트를 돌며 금품을 훔쳐온 혐의로 중국인 6명이 구속되기도 했다. 충북 제천경찰서에 따르면 중국 푸젠성에서 무장경찰 생활을 하다 2002년 어학연수생으로 입국한 스모(34)씨는 중국집 배달일 등을 하며 불법체류 생활을 하다 밀입국한 허모(26)씨를 만나 함께 범행을 저질렀다.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세탁소를 운영해 온 한 40대 상인은 “중국인은 사람을 칼로 찌르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사람 죽여도 총살 당할 일은 없잖아요. 중국 사람이 그래서 사람 죽이는 걸 쉽게 생각한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선 사람 죽여서 잡혀도 감옥 살다 나오면 되고, 아예 중국으로 다시 돌아가면 되니까요. 그리고 중국 사람이 자기 나라가 한국보다 훨씬 강국이라 사람을 죽여도 중국이 자기를 데려갈 것이란 착각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어요. 여기 살던 안산 사람은 몇 년 전부터 원곡동을 떠나기 시작했어요. 10개 넘게 있던 세탁소가 지금 4개밖에 안 남았어요.”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의 외사수사인력은 1020명으로 경찰 인력의 1.1%다. 외국인이 밀집해 있는 안산 단원경찰서 외사계는 외사 인력이 모자라 외국인 범죄에 대한 연도별 통계조차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조선산업의 호황으로 모두 4500여명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경남 거제 지역 거제경찰서에는 외사 업무를 단 두 명이 맡고 있다. 1200여명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경남 통영에서는 단 한 명의 경찰이 외사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2006년 제주도의 외사사범은 133명으로 2005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그러나 제주도에는 외사과 자체가 없다. 경찰청에 따르면 검거한 외국인 피의자는 2002년 4328명에서 2005년 9042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지만, 외사담당 경찰인력은 같은 기간 21.6% 증가하는 데 그쳤다.
외국인 범죄가 늘면서 이들에 대한 재판 수요도 늘어 법정의 통역인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대법원에 따르면 재판 중 통역을 담당하는 법정 통역인은 2006년 기준 22개 언어 541명이다. 중국어 통역이 79명, 영어 통역이 76명으로 가장 많고 불어, 몽골어, 터키어, 우크라이나어 통역도 있다.
2001년 1심 형사재판을 받은 외국인은 927명, 2005년엔 2164명이다. 2006년 10월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마약 복용 혐의로 재판을 받은 필리핀인이 타갈로그어만 쓰고 영어를 쓰지 못하자 필리핀 대사관이 타갈로그어로 통역을 맡고, 한국 통역인이 영어통역을 맡는 이중 통역 재판도 벌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 범죄자는 한국인 범죄자를 잡는 것보다 몇 배 더 어렵다고 설명했다. 안산역 토막살인사건에서도 사건 발생 첫날 시신을 담은 여행용 가방에서 용의자 지문이 10여개나 발견됐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경기도 안산단원경찰서 문경연 강력팀장은 “일반적으로 이 정도 지문이 나왔다면 한국인은 1~2일 사이에 용의자의 신원이 파악됐겠지만 범인이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무의미한 단서였다”고 말했다. 게다가 외국인 범죄자의 신원을 확보하더라도 범행 직후 잠적해 버리면 주소나 연고지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한국인은 성인이 되면 바로 지문을 채취하고 주소가 행정전산망에 기록된다. 경기지방경찰청 이명균 강력계장은 “내국인은 지문채취를 하면서 외국인 지문채취는 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며 “여행객까지 지문을 채취해서는 안 되겠지만 장기체류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지문을 채취해야 외국인의 강력범죄에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녁이 되자 야간 근무를 하는 외국인은 공장으로 가는 통근 버스에 올랐다. 밤 10시를 넘어서면서부터 원곡동 외국인타운의 상인은 가게 문을 닫기 시작했다. 내일 또 공장으로 나가는 외국인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한 베트남 여성은 “사람이 죽어서 우리도 무서워요. 일찍 집에 들어가야 해요”라고 더듬더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