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산업이 시작된 건 1988년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 반려동물 식품 사업에서 1위를 고수하던 퓨리나가 한국 펫(pet)시장의 발전가능성을 보고 펫케어(pet care)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우리나라 사람은 어리둥절하게 반응했다.
남은 밥 대충 모아서 개에게 주던 시절이었으니 개에게 줄 사료를 사서 먹인다는 것 자체가 낯선 상황이었다. 게다가 반려동물 간식에 대한 반응은 더했다. "개 껌이 뭐예요? 개가 껌을 씹어요?" 지금은 보편화된 개 껌이지만 그 시절에는 이렇게 묻는 사람이 많았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반려동물산업은 어떻게 발전되었을까? 현재 우리나라의 반려동물산업 규모는 1조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한국펫산업협회의 2006년도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 가격 기준으로 사료를 비롯한 식품시장 규모가 2700억원, 의류 및 용품 시장이 1000억원으로 전체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 의료, 미용, 분양산업 등이 합쳐져 1조원이 약간 넘는 시장 규모를 보이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반려동물산업의 규모가 1조원을 넘자 전문가들은 2005년이면 4조원대의 시장이 될 것이라고 낙관했지만 2007년 시장의 규모는 여전히 1조원대를 넘나들고 있다.
초기 급격한 팽창을 보였던 반려동물산업이 이처럼 숨 고르기 기간을 오래 갖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을 꼽자면 팽창기에 반려동물 보유 가정 수에 비해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늘었던 것이다. 2004년도의 수도권 반려견 보유 가정 수는 2001년도에 비해 1.3배 증가했는 데 반해 반려용품시장은 그 몇 배로 신장했으니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조정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 당연한 결과다. 2004년부터 찾아온 장기 불황도 반려동물산업에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반려동물산업이 조정기를 겪는 것은 특이하지 않다. 반려동물산업의 선진국이라 일컫는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한국만의 특징이 보태진 것이 있다면 바로 냄비 근성이다. 2000년대 초반 각종 매스미디어는 반려동물을 오락 프로그램의 소재로 사용했고, 그 영향으로 반려동물 보유 가구 수는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그런 과다 노출과 왜곡된 시각으로 인해 늘어난 시장에서는 유기견 문제와 동물학대 문제 등 성숙하지 못한 반려동물 문화가 나타났다. 예쁘고 귀여우니까 개를 샀다가 버리고, 유행이니까 고양이를 샀다가 버리는 문화는 우리나라 반려문화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펫산업협회 김진오 회장의 지적이다.
“한국의 반려동물산업은 성숙한 반려문화와 함께 발전되어야 합니다. 물론 외국도 유기견, 학대 문제가 많죠. 하지만 버리지 못하고, 학대하지 못하도록 꾸준히 교육하고 관리하는 정부와 단체, 기업, 매스미디어의 노력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게 없습니다. 재촉하지 말고 차근차근 문화적 기반을 만들어 나가는 게 반려동물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다행히 작지만 그런 조짐이 조금씩 보이고 있으니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반려동물문화가 지금까지는 단점만 부각되어 나타나고 있지만 시간적 여유를 갖고 지켜본다면 충분히 성장할 미래산업이고 한국시장의 특징이 오히려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반려동물산업은 사료, 용품, 의료, 분양 서비스가 반려산업의 주축이고, 훈련소, 호텔, 애견 펜션, 장례업, 펫시터 등의 서비스업이 세분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개 관련 용품이 500여종류, 고양이 관련 용품이 150종류가 판매될 정도로 반려동물의 생활에 편의를 주기 위한 용품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나이 든 반려동물이 늘면서 한방 동물병원도 늘고 있다.
또한 애묘 산업의 선전도 눈에 띈다. 애묘 시장은 젊은층과 동호회를 중심으로 느리지만 견고하게 성장하고 있어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반려동물산업의 내용은 나라별 국민소득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평균적으로 국민소득 3만달러 시기에는 반려동물 장례업이 등장하고, 4만달러 시기에는 반려동물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문화가 등장한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반려동물산업이 20년 정도 앞선 국민소득 3만5000달러 이상의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의 경우 반려동물 보유 가구 수가 55%에 육박하며, 반려동물산업 규모도 2005년 미국이 35조원, 일본이 18조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시장 규모에 따라 산업도 세분화해 애완동물 놀이방, 강아지를 위한 요가 강습소, 반려동물을 위한 온천, 마사지숍 등을 흔히 볼 수 있으며, 2003년 영국에서는 사람 칫솔보다 개 칫솔이 더 많이 팔렸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반려동물산업 규모도 작고 반려동물 보유 가구 수도 18% 수준이다. 반려동물 장례업만 봐도 선진국의 경우 반려동물이 죽으면 60~90% 이상 화장, 매장 등으로 장례를 치르고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화장비율이 3~5% 정도 수준이다. 하지만 반려동물 문화의 발달과 함께 장례문화도 정착되리란 게 전문가의 전망이다. 반려동물산업은 세분화하고 다양화하면서 반려문화와 함께 안착하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은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반려동물사업은 국민소득의 성장과 함께 가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물질적인 삶이 풍족해질수록 사람들은 고향과 같은 온기를 그리워하게 되고 반려동물에게서 바로 그 고향을 찾게 될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10월 한국영화 시장에는 의미 있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동물이 주연인 영화 ‘마음이’가 100만관객을 돌파하는 돌풍을 일으키며 그 달의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것이다. 한국에서 동물영화는 안 된다고 여겨지던 상황에서 ‘마음이’의 선전은 고무적이었는데 그 뒤에는 반려동물 동호회 회원의 열성적 응원이 있었다. 이 영화의 흥행처럼 한국의 반려동물산업의 시장이 아직은 작지만 엄청난 연대감을 바탕으로 조금씩 진화하고 성장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김보경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