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만주 치치하얼(齊齊哈爾)에서 설원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200km쯤 가면 내몽고 접경 눈강(嫩江)시가 나온다. 여기에서 북서쪽으로 비슷한 거리를 북상하면 악륜춘족자치기(鄂倫春族自治旗)에 닿는다. 아리하(阿里河)로도 불리는 도시이다. 아리하 서북쪽 산 중턱에는 선비족 탁발씨(拓跋氏)의 발상지인 알선(�仙) 동굴(洞窟)이 있다. 1000 명 이상이 들어가는 커다란 동굴이다.

'위서(魏書)' 오락후(烏洛侯) 열전에 따르면 북위의 3대 황제 태무제(太武帝: 재위 424~452) 때 대흥안령산맥 동쪽에 있던 오락후국에서 사신을 보내 이 동굴이 탁발씨의 발상지라고 알렸다. 태무제는 즉각 중서시랑(中書侍郞) 이창(李敞) 등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알선동굴 벽면에는 "천자 신(臣) 탁발도(拓跋燾)는…"이라며 지상의 천자 태무제가 황천의 신(皇天之神)에게 제사 지낸 내용이 나온다. 북위 멸망 후 1500여 년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알선 동굴은 1980년 7월 중국 현지 연구자에 의해 세상에 드러났다.

순암 안정복(安鼎福)은 '동사강목(東史綱目) 조선명호(朝鮮名號)'조에서 '동방(東方)은 곧 백두산의 기슭이고 백두산은 선비산으로부터 뻗어내렸다'라고 흥안령산맥과 백두산을 이어서 설명했다. '삼국사기' 고구려 신대왕 4년(168)조에는 '한나라 현도 태수 경림(耿臨)이 침범해서 우리 군사 수백 명을 죽이자 왕은 항복하고 현도군에 복종할 것을 청했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런데 같은 해인 '후한서(後漢書)' 효령제(孝靈帝) 건녕(建寧) 원년(元年:168) 12월조에는 '선비와 예맥이 유주와 병주 2주를 공격했다(鮮卑及濊貊寇幽幷二州)'고 썼다. 유주(幽州)는 현재의 북경 부근이고 병주는 그 서쪽이다. '한서(漢書)'나 '후한서(後漢書)'는 고구려와 예맥을 같은 세력으로 기술하고 있다. 고구려 신대왕이 항복한 것이 아니라 곧이어 선비와 함께 한나라를 보복 공격했음을 말해준다. 고구려와 선비는 이렇듯 공동 군사작전을 펼칠 정도로 강한 동질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