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1996년 만화 ‘안개꽃 카페’의 한 장면. 술집 여종업원이 틈틈이 독서에 열중하고 있는 걸 본 손님이 그게 무슨 책이냐고 묻는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였다. 한 역사학과 교수는 “90년대 중반부터 면접을 보는 수험생 대다수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노라고 당당하게 밝히더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1995년 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우리말로 첫 출간된 지 12년, 이 책은 한국에서 ‘독서 교양인’을 상징하는 기호와도 같았다. 일본에서 문고판을 빼면 230만 부가 팔린 걸 볼 때 250만 부가 팔리고 539쇄를 찍어내게 한 우리의 관심은 참으로 폭발적이었다.

마침내 마지막 15권 ‘로마 세계의 종언’의 출간으로 200자 원고지 2만여 장 분량의 이 대작은 한국에서도 완간됐다. 마지막 권은 ‘국가의 종말’보다는 ‘문명의 종말’에 초점을 맞춘다. 로마는 치열한 공방전 속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멸망했으며, 식민지의 독립으로 해체된 다른 제국과는 달리 본국과 속주가 같은 운명을 맞았다는 것이다. ‘썩은 고목이 쓰러지듯 무너졌다’는 에드워드 기번의 고전적인 문구 대신, 시오노는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래서 ‘위대한 순간’도 없이, 그렇게 스러져갔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의 책에서, 로마사는 더 이상 먼 나라의 옛 이야기가 아니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현실주의와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배층의 도덕적 책임), 타인을 인정하는 관용성의 견지에서 현대적이고 입체적인 인물로 되살아난다. 이상적인 세계화를 염두에 둔 독창적인 해석, 소설을 방불케 하는 역사평설(歷史評說)식의 서술은 정보와 인문적 교양, 재미를 바라는 독자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책은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지나친 상상력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소설”(허승일 서울대 명예교수)이라는 비판에서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를 사로잡은 아마추어의 역사서”(김경현 고려대 교수)라며 나름대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평가까지 국내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양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이 책의 심각한 문제점을 짚고 있다.

작년 말 기자회견에서 시오노는 “모든 인종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집필 동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문제는 그 갈망이 너무나 지나쳤다는 것이다. 로마의 ‘통합’과 ‘관용’을 미화하는 입장 위에 서다 보니 그리스의 민주정과 기독교의 일신교(一神敎)는 부당한 폄하의 대상이 된다. “자유와 평등의 이념은 분열과 위축을 초래한다”는 식의 서술은 급기야 마지막 권 후기에서 “평화가 왜 어떻게 실현됐는지를 아는 게 목적인 이상 정치체제가 제정(帝政)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는 고백으로 연결된다. 전제군주정의 시작을 알린 카이사르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와 키케로 같은 지식인에 대한 비하 역시 도를 넘어선다는 지적이 많다.

더욱 큰 문제는 저자의 그런 시각들이 곳곳에서 ‘자유와 평등보다는 체제 순응을 통해 대국(大國)의 길을 걸어 온’ 현대 일본의 역사와 겹칠 뿐만 아니라, 15권 전체가 일본의 우익적 진로 개척을 위한 조언일 수도 있다는 섬뜩함이다. 성공과 권력지상 같은 공격적인 가치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은 참으로 복합적인 시대적 상황의 반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