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정부와 민진당이 ‘장제스(蔣介石) 전 총통 지우기’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49년 공산당에 패해 대만으로 건너간 장제스는 1975년 숨질 때까지 집권하며 현 대만 건설의 아버지로 평가받아 왔다. 하지만 51년간의 국민당 통치를 종식시키고 2000년 집권한 민진당은 장 전 총통 흔적 지우기를 통해 ‘탈(脫)중국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공공시설에서 장제스 자취 추방
유시쿤(游錫�) 민진당 주석은 지난 5일 중앙상임위원회에서 두 가지 결정을 내렸다. 하나는 장제스가 올해 60주년을 맞는 2·28사건(국민당 군대가 대만 주민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수만명이 희생된 사건)의 원흉임을 확인하는 것. 또 하나는 지금까지 매년 국고 7000만 대만달러(약 20억원)를 들여 헌병 130여 명이 장제스 묘소를 24시간 경비해 온 것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것.
유 주석은 "장 전 총통은 수많은 대만인을 희생시킨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와 유족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특별대우를 박탈해야 한다"고 행정원에 공식 요구했다. 민진당 의원들은 공원과 도로, 다리 등에 있는 '중정(中正·장 전 총통의 본명, 介石는 자)'이라는 글자를 모두 지우고 1, 5, 10대만달러 동전에 새겨져 있는 장제스의 얼굴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진당은 또 타이베이(臺北) 중심부에 있는 '중정 기념당'을 '대만 민주기념관'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만 정부는 작년 9월 타이베이 '중정공항'을 현지 지명을 딴 '타오위안(桃園)공항'으로 개명(改名)했다. 이는 장제스를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독재자로, 대만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인물로 재규정하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의 '장제스 재평가' 움직임과 대조
이런 분위기는 군부로도 퍼지고 있다. 대만 중국시보는 "대만 국방부가 군 기지와 교육기관·훈련소 등에 있던 200여 개의 장제스 동상을 최근 철거했다"고 5일 보도했다. 군부는 학교·정부 기관과 달리 장제스가 공산당의 대만 침공을 격퇴했다는 이유로 동상을 철거하지 않아 장제스의 마지막 아성(牙城)으로 불려왔다.
대만 국방부는 "동상의 부식을 막기 위해 실내로 옮겼으며, 군인들은 장제스를 대만 군부의 창설자로 여전히 존경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장제스의 손자이자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서자인 장샤오옌(蔣孝嚴) 국민당(야당) 입법위원은 "군부의 조치는 '배은망덕'"이라고 비난했다. 또 다른 야당인 친민당의 리훙춘 입법의원도 "중국은 매일 경제기적을 이루고 있는데, 민진당은 과거사 재평가와 중국의 문화혁명 같은 방식으로 국력을 낭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만의 분위기와는 달리, 중국 정부는 최근 항일 투쟁사에서 장제스의 공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관련 서적과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베이징 항일기념관에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를 게양하는가 하면, 저장(浙江)성 펑화(奉化)현에 있는 장제스 출생지도 국가급 유적으로 보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