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동(楓洞)은 최근 들어 택지지구 개발로 주목 받고 있는 일산신도시 인근 지역. 지금은 고층 아파트들의 천국이 됐지만, 원래는 평온한 시골마을이었다. 크게 ‘애니골’ ‘숲속마을’ ‘민마루’ ‘단풍마을’로 나뉜다.
◆'애니골'은 사랑고개
풍동은 먼저 '애니골'로 잘 알려져 있다. 원래 '애현(愛峴)골', 즉 사랑고개로 불렸다. 이것이 발음의 변화를 겪으면서 지금처럼 불리게 됐다고 한다. 현재 연인들에게 사랑 받는 데이트 코스가 된 걸 보면, 지명이 미래를 내다본 듯해 흥미롭다. 애니골의 중심지는 풍1리에 속한 산 골짜기였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화사랑'을 비롯해 백마역 부근의 주점들이 옮겨왔다. 이 때부터 학사주점과 음식점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복이 쌓인다는 식골마을
가장 최근에 지어진 ‘숲속마을’은 인구밀도가 높은 아파트 지역으로 입주가 한창이다. 이 지역은 본래 ‘식골(食谷)마을’이었다. 고봉산 자락 숲 속에 있고, 남쪽을 빼곤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삼태기 같다’ 소리를 들었다. 덕분에 한번 들어온 복은 나가지 않고 쌓인다는 이야기도 전해왔다.
전주김씨, 전주이씨, 김해김씨, 단양우씨 등이 이곳에 집성촌(集姓村)을 이뤄 살았다. 주민들은 2년에 한 번씩 산치성(山致誠·산신령에게 정성을 드리는 일) 지내며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수백 년 된 참나무 당산목에서 올리는데, 맹인(盲人)이 치르는 게 특이하다. 나무 주변엔 짚으로 만든 ‘업양가리’ ‘대감가리’ 등 민속품이 보존돼 있다. 원형이 잘 남아있고 보존가치도 인정돼 고양시 향토문화재 40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고양지역에도 널리 알려진 13골 골짜기 이야기도 전해 온다. 두루미가 많다는 학골, 검은 바위가 있다는 검바골, 산등성이가 긴 장심이 등성이를 비롯해 움터골, 가작골, 쥐골 등에 관한 것이다.
◆줄지어 있던 단풍나무
풍동엔 오래 전 큰 단풍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가을이면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지나가던 이들도 마을의 상징으로 삼을 만하다며 부러워했다. 숲속마을에도 단풍나무가 많이 심어진다. 또, 소나무 공원을 비롯해 참나무, 이팝나무, 단풍나무 공원을 조성하고 공원이름도 나무이름을 쓸 예정이다.
식골 밖에 있는 민마루마을은 지금도 농촌의 모습이 남아있다. 이름은 문촌(文村)에서 유래했다. 인근에 유명 글방들이 있어 ‘문마을’이라 부르다 지금처럼 바뀌었다. ‘작은 고개가 있는 곳’이란 뜻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다. 1970년대 중반 조성된 이곳엔 근대화 과정에서 힘들게 살아온 서민의 애환과, 봉지쌀·연탄·판자집·철거민 등으로 통하는 도시민의 아픔이 새겨져 있다.
◆“풍동의 흔적과 역사를 남겨야”
풍동 주민들은 최근 2가지 일로 분주했다. 하나는 산치성을 치른 것. 다른 하나는 풍동 식골 마을사(史) 책자를 발간한 것이다. 2002년부터 준비해 최근 발간한 이 책엔 풍동의 개발 전 모습과 개발과정, 개발 뒤 모습이 글과 사진으로 자세히 남겨져 있다. 시작 때부터 열정을 쏟은 주민 가운데 일부는 고향을 떠난 뒤 별세(別世)했다. 몸은 이 세상엔 없지만, 그들의 고향사랑 마음은 영원히 책 속에 남아 역사와 함께 숨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