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는 단계별 글쓰기 프로그램의 두 번째 단계인 '논평문 쓰기'를 실습할 것이다. 논평(comment)은 주어진 텍스트를 논리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단계, 즉 텍스트를 통해 저자가 자신의 견해를 제대로 정당화(입증)하는지 여부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단계이다.
정당화의 충분조건 6가지
논평은 요약에서 출발해야 한다. 텍스트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채 논평을 하게 되면, 그것은 '주관적 관점에 얽매이거나', '사소한 내용을 문제 삼거나', '논의의 초점을 빗나간' 비판이 되기 쉽다. 요약된 텍스트를 중심으로 그것이 '정당화의 충분조건'을 충족시키는지 여부를 검토해 보고,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그 문제점과 한계를 드러내야 한다.
여기서 정당화의 충분조건이란 주어진 문맥이 정당화에 성공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속성들의 성격을 뜻한다. 이 속성들이 있는지 여부가 '논평 지침' 혹은 '논평 기준'이 된다. 속성들은 요약 지침과 연계된 것으로 다음의 6가지이다:
① 명확성 : 핵심용어의 의미는 명확한가?
② 사실적 정확성 : 글에 도입된 사실적 정보나 자료가 정확한가?
③ 유관성 : 전체적인 논의 내용이 논점 혹은 문제에 집중되어 있는가?
④ 타당성 : 근거들로부터 주장이 적절히 도출되는가?
⑤ 올바름 : 근거들은 모두 옳다고 여길 수 있는가?
⑥ 논의의 폭과 깊이 : 현안의 한 가지 측면 만을 다루지 않고 다양한 측면을 깊이 있게 언급하고 있는가?
정당화를 위한 근거는 모두 옳아야
아울러 어떤 주장이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필요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즉 그 주장이 적절한 근거를 가져야(타당해야) 한고, 그 근거들이 모두 옳아야 한다. 아래의 두 사례를 비교해 보자.
㉠ 옳지 않은 근거로 이루어진 문맥
모든 새는 고양이이다.
모든 고양이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새는 날개를 가지고 있다.
㉡ 적절하고 옳은 근거로 이루어진 문맥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아래 글을 논평하라
인간과 동물의 신체적 유사성에 근거하여 동물들도 다소 불완전하나마 인간들처럼 사고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견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할 수밖에 없다: 만약 그들이 우리가 하듯 사고할 수 있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불멸의 영혼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들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동물들이 영혼을 가졌다면 모든 동물이 그럴 것인데, 굴이나 해면 같은 것들은 너무도 불완전해서 그들이 불멸의 영혼을 가진다고 믿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물들은 사고할 수 없다.(데카르트 '방법 서설' 중에서)
위 글에 대한 논평은 아래의 두 과정을 거쳐서 이뤄진다:
위의 논평 지침을 적용하여 산출된 6개의 물음 각각에 대해 답변하면 다음과 같다:
▶명확성 : 핵심어 '사고'는 누구나 그 의미를 잘 아는 용어이므로 문제되지 않는다. '영혼'의 불명확성을 거론함으로써 영혼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으나, 논의의 핵심이 영혼의 존재 여부가 아니므로 이 용어의 불명확성이 중요하진 않다.
▶사실적 정확성 : 위 글에는 도입된 사실적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굴이나 해면이 불완전해 보인다'는 근거 또한 사실적 정보로 보긴 어렵다.
▶유관성 : 문제 없음
▶타당성 : '동물이 사고할 수 없다'는 주장이 위의 네 근거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도출되므로 문제 삼을 것이 없다.
▶올바름 : 문제 삼을 만한 것은 근거①과 ④이다. 우선 근거①은 영혼이 있어야만 사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옳다고 여길 수 없다.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뇌만 있어도 사람은 사고할 수 있다. 즉, 영혼의 소유는 사고할 수 있기 위한 필요 조건이 아니다. 근거④ 또한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거②와 ③으로부터 적절히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 동물의 경우를 과도하게 일반화하는 것은 오류이다.
▶논의의 폭과 깊이 : 위 글의 저자인 데카르트는 불멸의 영혼의 존재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또 근거 ①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인간 사고의 기반을 '불멸의 영혼'에서 찾고 있다. 두뇌과학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던 상황에서는, 기독교의 권위가 여전히 살아있던 당시로서 근거①은 당연하게 여겨졌을 수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적 관점에서, 게다가 비종교적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근거 박약한, 매우 편협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