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리더십의 핵심은 흔히 ‘말’과 ‘일’로 풀이된다. 국민을 감동시키는 말을 통해 국력을 한데 모으고, 이를 바탕으로 일을 해나가는 게 리더십의 요체라는 의미에서다. 미국인은 라디오와 TV가 없던 시대 명연설로 남북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한 링컨, 라디오의 노변담화를 통해 대공황과 전쟁의 위기를 넘긴 루스벨트, TV 연설을 통해 위대한 미국의 시대를 연 레이건을 3대 웅변가로 꼽는다.

‘위대한 커뮤니케이터(Great Communicator)’로 불린 레이건은 항상 유머를 잃지 않으며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얘기했다. 1981년 저격당한 후 태연히 “피하는 것을 잊었어”라는 농담을 건넸고,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했을 때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희망과 여정은 지속된다”는 말을 남겼다.

2007년 대선을 맞는 한국의 유권자에게 차기 주자의 말과 말솜씨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정치에서 말이 중요하다는 원론적인 의미도 의미지만, 지난 4년간 대통령의 거친 말에 시달린 경험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분노의 화법’은 국민을 이리저리 갈라놓으며 소모적인 논란만 불러왔다. 국민을 다시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감동의 언어’가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이명박 직설적이고 카랑카랑… 경험 중심으로 얘기
박근혜 품격있고 세련… 말 실수 거의 없어
고   건   방송 NG 안 낼 만큼 정확… 재치로 분위기 유도
손학규 논리적이고 문어체… 영화 대사 사용으로 순화
정동영 강약완급 탁월… 데이터나 숫자 많이 이용
김근태 신뢰감 주지만 경직… 직설·단문 표현에 주력

차기 주자 6명의 말솜씨만을 비교하면 달변가와 눌변가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경우 대표적인 달변가에 속한다. 화려한 수사와 비유를 앞세워 대중을 쥐락펴락하는 그의 언변은 정치인으로서 큰 재산 중 하나다. 반면 열린우리당 내 경쟁자인 김근태 의장의 경우 눌변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측근들조차 “제발 쇼맨십을 발휘해서라도 말을 좀 잘하시면 좋겠다”고 아쉬워한다. 김 의장의 어법은 소박하고 신뢰감을 주는 장점을 가진 반면 어눌한 듯하고 경직돼 있는 화법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 2006년 11월 심포지엄에서 연설을 하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차기 주자 중 선두를 달리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우는 “눌변에 가깝다”는 게 측근들의 말이다. 기성 정치인이 구사하는 매끈한 말솜씨와는 차이가 난다는 얘기다. 본인 스스로 “앉아서 말만 하고 사람이나 모아 몰려다니는 정치꾼”이라고 비판할 만큼 ‘말만 앞세운’ 기성 정치권을 불신해왔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시장의 목소리는 탁하고 갈라진다. 쇳소리가 섞인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인상적이지만 대중연설을 하면 귀에 거슬린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목소리가 좋지 않다고 할 말을 못 하는 건 아니다. 이 시장의 연설 스타일은 ‘스토리형’이다. 자신이 직접 겪은 현장 경험과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간다.

화려한 수사와 비유는 없지만 청중과의 교감과 설득력은 뛰어나다는 게 측근의 주장이다. 일종의 콘텐츠로 승부한다는 뜻이다. 어린 시절의 가난과 샐러리맨으로서의 성공스토리 등 극적인 인생 자체가 최대의 연설 소재라는 것이다.

연설 전에 스피치 담당자들로부터 연설문 초안을 받지만 별로 의지하지는 않는다. 꼼꼼히 읽어보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뜯어고친다고 한다. 메모 한 장과 손목시계 하나를 마이크 옆에 놓고 별다른 준비 없이 편안하게 연설하는 경우도 많다. 속에 있는 말을 다 하려고 하기 때문에 연설시간을 넘기는 일이 잦다. 작년 6월 서울시장 퇴임 후 그는 청년의 꿈과 도전, 대한민국의 비전을 단골 주제로 강연 정치를 해왔다.






▲ 2006년 4월 성균관대 여성동문회 특강에서 연설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박근혜 전 대표와 고건 전 총리의 경우는 달변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안정감을 주는 말솜씨가 장점이다. 박 전 대표는 올해로 정치 입문 10년을 맞지만 그 동안 단 한 번도 설화(舌禍)에 시달리거나 구설수에 휘말려본 적이 없다. 다른 대선주자처럼 “진의가 잘못 전달되었다”는 식의 해명을 해본 일이 없다고 한다. 박 의원의 한 참모는 “말 실수가 없다는 것이 박 대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강조한다.

말 실수가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다변(多辯)이 아니라는 뜻이다. 박 전 대표는 핵심을 찔러 짤막하게 말한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피습으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직후 “대전은요?”라고 짤막하게 던진 질문이 박빙의 판세를 완전히 뒤집었다.

박 전 대표는 정치에 입문한 이래 자극적이거나 상스러운 표현도 써본 일이 없다. 박 전 대표는 참모들이 연설문에 공세적이고 자극적인 문구를 쓰면 본인이 직접 이를 지우고 점잖고 품위 있는 말로 바꾸곤 한다. 참모들이 자극적인 언사를 요구할 때마다 “세련된 언어 표현을 써야 정치의 품위가 살아난다. 품격 없는 발언을 해 정치의 질을 낮춰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 2006년 8월 희망한국 국민연대 창립총회에서 연설하는 고건 전 총리.

고건 전 총리의 경우도 오랜 공직생활에서 얻은 차분한 말솜씨가 인상적이다. 정확하고 신중한 용어 구사가 장점이다. 비교적 낮은 톤에다 말의 속도도 빠르지 않지만 과거의 다양한 행정 경험이 묻어나는 말에서 중량감이 느껴진다. 반면 대중을 휘어잡는 연설에는 다소 약하다.

측근들은 “대중 선동보다는 소규모 그룹과의 대화에 능하다”며 “소규모 그룹과 대화할 때는 재치 있는 유머를 구사해 청중을 사로잡는다”고 말한다.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말을 특유의 유머로 커버한다는 말이다.

그의 유머 감각을 보여주는 일화가 적지 않다. 탄핵정국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2004년, 그가 스스로를 ‘권한대행’이 아니라 ‘고난대행’이라고 표현한 것도 그 중 하나다.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돼 있고, 처리해야 할 국가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스스로의 입장을 ‘고난대행’이라고 표현한 것.

“지하철은 땅 속에 있어서 잘 안 보인다”는 말도 그가 남긴 유머다. 그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청계천은 뜨는데, 고 전 총리의 서울 지하철은 왜 안 뜨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민선시장을 맡으면서 서울 2기 지하철 5, 6, 7호선을 동시에 착공해 건설했다”며 “매일 1000만명이 이용하고 있지만 땅 밑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고 답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나누기 정치”도 그의 유머감각이 묻어나는 용어다. 그는 우리 정치의 현실을 진단하면서 “가장 큰 문제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편가르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나눔의 정치가 아니라 나누기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고 전 총리는 “대중 연설 실력을 보완하기 위해 특별한 연습을 하지도 않고 연기 지도를 받지도 않는다”며 “그런데도 방송계에선 녹화 인터뷰 때 NG를 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한다”고 말했다. 측근들은 “연설문은 모두 고 전 총리가 직접 준비한다”며 “대중 연설 전에 독서카드 한 장에 요지를 정리해 놓는다”고 말했다.

유머는 요즘 차기 주자들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딱딱한 말 열 마디보다는 적절한 유머 한 마디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전 시장의 경우 요즘 원고에는 전혀 없는 애드리브 유머로 자신에 대한 날카로운 인상을 누그러뜨리고 있다. “집에선 딸들에게 못생겼다고 구박당한다”면서도 “탤런트 유인촌씨와 다녀도 내가 더 잘생겼다고 한다”며 외모와 관련된 농담을 자연스레 구사한다. ‘황제테니스’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이 전 시장은 좋아하는 운동을 물을 때 “좋아하는 운동요? ‘황제테니스’잖아요. 족구도 해보고 싶은데 ‘황제족구’한다고 할까 봐…”라며 재치 있게 넘긴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도 요즘 농담으로 좌중을 사로잡는 일이 잦다. 작년에 부산대 특강에서 굳은 얼굴로 청와대 시절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수필집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을 읽은 분이 있으면 손 들어보라고 묻고는 “그 책이 많이 안 팔렸습니다. 그것도 저에겐 시련이었습니다”라고 말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기자들에게 “돼지 통구이를 만드는 방법을 아세요?”라고 묻고는 “난센스 퀴즈예요. 돼지 코에다 소켓을 꼽으면 돼요”라고 답하는 등 평소 주변에 던지는 ‘썰렁 유머’도 전매특허가 되고 있다.






▲ 2006년 12월 '동북아 시대의 국가전략'을 주제로 연설하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

손학규 전 지사와 김근태 의장은 말에서 풍기는 인상이 비슷하다. 두 사람은 경기고(1962년 입학), 서울대 동기생(1965년 입학). 엘리트 출신으로 매사에 진지하고 사색적인 성격답게 말도 현학적이고 어렵다.

그만큼 대중이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 두 사람 모두 연설이나 대화할 때 ‘기승전결’ 방식이 항상 머릿속에 있는 것처럼 비쳐질 만큼 논리적이다. 자연히 복문과 중문이 많고 구어체보다는 문어체를 즐겨 사용한다.

손 전 지사의 경우 교수 출신이라 강연에는 능하지만 이런 어려운 말솜씨를 극복하는 게 요즘 최대 과제라고 한다. 그는 연설이나 강연을 할 때 눈에 잘 띄는 곳에 메모지 한 장을 붙여놓는다는 게 측근의 말이다. 메모엔 ‘쉽게, 짧게, 두괄식으로’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고 한다. 강연을 흥미 있고 속도감 있게 끌어가려는 나름의 방법이다. 요즘에는 목소리 톤도 강하게 가져가고 임팩트 강한 영화 대사 등도 사용한다.

손 전 지사는 “최상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은 솔직담백함이라고 믿는다”며 “말의 기술 보다는 내용, 포장된 내용 보다는 솔직한 내용을 담으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 2006년 2월 열린우리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김근태 의장.

김근태 의장 역시 근엄하고 기복이 없는 ‘교장 선생님’ 어법을 바꾸는 게 과제다. 요즘에는 연설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며 단호하고 직설적인 표현을 많이 쓰려고 노력한다. 참모들 역시 “현장의 생동감 있는 단어를 골라서 써야 한다” “단문으로 잘라서 간단명료하게 말하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참모들은 그가 “말투는 어눌하지만 관철시켜야 한다고 여기는 사안에 대해선 어느 누구보다 분명히 말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 또 “설사 독배(毒杯)를 마시는 일이 되더라도 피할 수 없었다” “꽃은 흔들린 만큼 줄기가 강해지는 법” 등 인구에 회자되는 명언도 많이 남겼다고 한다.

반면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탁월한 대중 연설 솜씨를 자랑한다. 부인 민혜경씨도 “유세장에 가보면 ‘저 사람이 내 남편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고 할 만큼 연설무대에만 서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평을 듣는다. 방송국 앵커를 오래 한 경험도 한몫하지만 대학생 때 고려대에서 주최한 발표대회에 나가 1등을 할 정도로 본래 웅변력이 좋았다.






▲ 2006년 5월 광주에서 가두연설을 하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

전문가들은 그의 화법에 대해 강약과 완급을 잘 조절하는 게 최대의 장점이라고 한다. 핵심 참모인 이재경씨는 “참고자료나 핵심주제 몇 개만 드리면 직접 연설문 골격을 짜고, 본인의 말투와 문장으로 만들어 연설을 한다”고 했다. 정동영 전 의장과 40년 지기이자 청와대 연설담당 비서관을 지낸 고도원씨는 “사고 구조가 탄탄하지 않고선 목소리가 좋고 암기를 잘한다고 말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요즘 들어 정 전 의장은 부쩍 데이터와 숫자를 많이 인용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말이 떠 있는 것 같았는데 요즘은 치열한 고민을 해선지 꽉 차진 것 같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그는 화려한 말솜씨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보는 측면도 있다. 말솜씨만 부각돼 ‘콘텐츠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흔히 듣는다. 또 자신감 있게 많은 말을 하다 보니 실수도 생긴다. 2004년 총선 때 ‘노인폄하 발언’은 그를 두고두고 괴롭히고 있다.

이명박 전 시장의 경우도 말 실수로 고생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서울시장 재임 중인 2004년 한 기독교 행사에 참석해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하느님이 다스리는 거룩한 도시이며 서울시민은 하느님의 백성임을 선포한다. 서울의 회복과 부흥을 꿈꾸고 기도하는 서울 기독청년들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수도 서울을 하느님께 봉헌한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 전 시장은 또 2005년 시사저널과 인터뷰에서 “솔직히 노무현, 이회창을 놓고 인간적으로 누가 더 마음에 드냐 하면 노무현 대통령이다. 이쪽(이회창)은 너무 안주하고 주위에서 둘러싸고 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측근들은 이 전 시장이 너무 직설적으로, 즉답을 하는 게 약점이라고 지적한다. 기업 CEO 시절 바로 바로 지시하는 스타일이 몸에 뱄기 때문이다. 한 측근은 “이 전 시장은 대답에 시간을 끄는 스타일이 아니라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얘기한다”라며 “그래서 실수의 소지가 항상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시장을 아끼는 한 대학 총장이 “즉답을 피하라”고 충고했을 정도다.

박근혜 전 대표는 말 실수는 없지만 준비된 말만 정확히 전달하는 게 오히려 약점으로 지적된다. 대표 시절 수첩에 적어온 말만 또박또박 읽는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수첩공주’라고 부르기도 했다.

대선주자들은 각자 연설 모델로 삼는 정치가를 하나쯤 갖고 있다. 고건 전 총리는 “김구 선생과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며 “클린턴이 제시했던 기회 확대와 김구 선생의 애국심을 배우려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의 경우는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1863년 11월 19일) 얘기를 자주 꺼내곤 한다. “게티스버그 연설에 자극적인 표현이 어디 있고 어려운 말이 어디 있나요. 중요한 것은 진정성입니다.” 정동영 전 의장은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 왔다고 한다. 케네디처럼 ‘국민의 가슴을 때리는 메시지’를 중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