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북쪽으로 3시간 정도를 운전해 가면 길가에 세워진 적도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차를 세우고 기념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한 쪽에 좌판을 벌여놓고 기념품을 팔던 상인이 다가와 실험을 하나 보여주겠다고 한다.
그는 손에 작은 그릇을 두 개 들고 있었다. 그 중 한 개에는 작은 구멍이 뚫어져 있어 물을 부으면 졸졸 흐르게 만들어진 구조이다.
그가 보여주겠다고 하는 것은 일명 '코리올리 효과'로 알려진 현상이다. 세면대에서 물이 빠져나갈 때 물이 회전을 하면서 빠지는데, 이 회전의 방향이 북반구와 남반구가 다르다고 한다. 이는 지구의 자전 때문인데, 그 힘을 '코리올리의 힘'이라고 부른다.
어렸을 때 과학 책에서 읽은 것이 생각 나서 기대가 생겨났다.
상인은 먼저 적도 표지판으로 부터 20미터 남쪽으로 걸어갔다. 구멍이 뚫린 그릇에 물을 붓고 바닥에 놓는다. 그 위에 성냥개비만한 나무 조각을 놓으니 물의 회전을 따라 돈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다시 상인은 적도 표지판 북쪽 20미터 위치로 옮겨가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시계 방향이다.
그렇다면 적도 바로 위에서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표지판 아래에서 실험을 다시했다. 나무조각이 돌지 않는다.
책에서만 읽었던 그 현상을 눈으로 확인하다니, 그리고 지금 내가 지구의 적도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이렇게 실감할 수 있다니, 그런 생각으로 즐거운 실험이었다.
실험을 구경한 일행은 그 상인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좌판에서 기념품 몇 개를 사기로 했다. 나는 돌로 만든 지구 모양 조각품을 샀다. 적도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기위해 보충 자료를 찾아보았다. '코리올리의 힘' 검색!
의외의 내용들이 검색되었다. ' 적도 부근에서 코리올리의 힘은 0가 된다.' ' 적도 이외의 지역에서도 코리올리의 힘은 매우 작아 실제로 관찰하기 힘들다.' ' 실제로 목욕탕을 관찰할 경우, 물빠짐 회전은 방향이 일정하지 않은데, 이는 코리올리의 힘보다 다른 요소가 더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확인을 위해, 적도에서 보았던 그릇과 비슷한 실험장치를 만들어 다시 실험해 보기로 했다. 북위 37.5도 서울에서 나뭇 조각은 돌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 적도에서 만난 상인의 실험은 무엇일까?
동영상을 다시 보았다. 그가 그릇에 물을 따를 때, 약간 기울이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물을 한 쪽으로 부어, 그 붓는 힘으로 그릇 안의 물이 회전한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물을 붓자마자 그렇게 빠른 속도로 회전할 리 없는 것이다. 속았다.
케냐 적도에서 만난 그 기념품 상인은 엉터리 실험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던 어설픈 상식때문에 완전히 속아 넘어가야만 했다.
스스로 알고 있다고 믿지만, 알지 못하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