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동 모 휴대폰 대리점에 근무하는 A(여·27)씨. 혼자 점심을 먹을 때면, 서둘러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 피시방으로 향한다. 피시방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20여 분이다. 그 시간 동안 컴퓨터 앞 재떨이엔 담배 두 개비가 꽂힌다. “회사 동료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A씨는 쑥스럽게 말한다.
지난 4일 점심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한 피시방. 20대 여성이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안돼, 또래 여성 2~3명이 우르르 들어온다. 그리고 일제히 담배 연기를 천장에 뿜는다. 이들도 10분이 안돼 피시방을 떠난다.
이처럼 피시방이 젊은 여성들의 ‘몰래 흡연’ 장소로 각광받은 지는 오래다. 서울 대치동 R 피시방 직원은 “단골손님 가운데 매일 아침 출근 직전 15분 동안 담배를 3개비나 피우고 나가는 여성분도 계신다”고 말했다. 역삼동 B피시방 직원도 “오전에 하루 평균 3분 정도 젊은 주부들이 담배만 피다 나가시곤 한다”고 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금연운동협의회가 지난 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여성 10명 중 1명 이상(12%)이 담배를 피운다. 이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30%에 달한다. 여성흡연자 10명 중 3명이 20대인 셈이다.
젊은 여성들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찾는 곳이 바로 피시방. 특히 주위 사람들에게 흡연 사실을 숨기는 여성들에게 ‘피시방’은 안성맞춤이다. 흡연자인 김모(여·25)씨는 “회사 내에서는 다른 직원들 눈치 때문에 흡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점심시간, 혹은 심부름 하고 남는 시간에 잠깐씩 피시방에 와서 담배를 피우곤 한다”고 말했다. 건국대 입구 역 근처 피시방에서 만난 여성 흡연자 B(24)씨도 “요즘 거리에서 흡연하는 여성들이 늘었다지만 길에서 담배를 피우다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안 좋은 소문이 돌까 두렵다”고 했다.
피시방을 찾는 여성 흡연자 중 철저한 준비를 하는 이들도 있다. 종로에 위치한 한 피시방 직원은 “간혹 담배 냄새가 배지 않기 위해 카운터에 미리 옷을 맡기는 여성 손님들이 있다”고 했다. 칫솔까지 챙겨와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 이복근 기획부장은 “예전에는 여성들이 흡연 공간으로 카페를 애용했다.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짧은 시간 이용할 수 있는 피시방이 인기”라며 “주말엔 친구들과 어울려 술집에서 흡연하지만 평일에는 혼자 피시방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평일 홀로’ 담배를 피울 공간으로 피시방을 선택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대학생 이승희(여·25)씨는 “숨어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인데 당당히 피지 못한다면 차라리 끊는 게 낫지 않을까”라고 부정적인 목소리를 냈다. 교사 조희정(여·24)씨는 “여성 흡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증가했지만 그 행위 자체가 공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는 결국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피시방’ 흡연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도 있다. 단시간에 3~5개비씩 몰아서 담배를 피우기 때문. 한국금연연구소 최창목 소장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참고 있다가 피우면, 한꺼번에 여러 개비를 피우거나 연기를 깊이 마시게 된다. 이는 건강에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