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세밑, 대전시향의 상임 지휘자 함신익(49)은 한국 음악계의 논쟁 한 복판에 서있다. 벤저민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을 초연하고 ‘말러 시리즈’ 같은 굵직한 기획 연주회를 통해 지역 교향악단을 한층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작 임기 6년을 마치는 올해 말로 대전시향을 떠난다.
대전시는 단원 평가와 전문가 의견 등을 참조해서 그를 재위촉하지 않기로 했다. 음악계와 지방자치단체의 평가가 서로 엇갈린 것이다. 30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음악회는 그의 마지막 대전시향 지휘 무대이기도 하다. ‘마지막 콘서트’를 위해 대전으로 가려는 그를 붙잡았다.
―6년간 몸 담았던 오케스트라를 떠나는데 아쉬움은 없는가.
“조용히 떠나려고 한다. 한국 오케스트라가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려있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치료할 수 없는 병이란 무엇인가.
“한국의 교향악단은 일종의 ‘사회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잘하든 못하든, 급여는 연공 서열에 따라 똑같다. 잘해도 큰 소득이 없고, 못해도 큰 손실이 없다면 뭐하려고 열심히 하겠는가. 의욕이 있어도 지금 같은 현실에서는 ‘저 사람 왜 저래?’라며 손가락질 받기 쉽다.”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서울시향처럼 (재단법인으로) 독립시켜야 한다. 청중들의 눈높이는 서울에 맞춰져 있는데, 지역에서는 싼 값으로 좋은 협연자를 섭외하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전시 행정’용 오케스트라로는 안된다. 독립시킨 뒤에 오케스트라에도 능력별 인센티브 제도를 과감하게 도입해야 한다.”
―지역 교향악단의 여건은 어떤가.
“처음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을 때는 제대로 된 연습실이 없어서 옛 시청 회의실에서 연습했다. 때로는 에어컨 소음이 오케스트라 소리보다 커서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를 뜻하는 말)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지금도 콘트라베이스는 악기를 제대로 보관하고 옮길 수 있는 케이스조차 없다.”
―지난 6년 활동을 평가하면.
“‘전쟁 레퀴엠’을 비롯해 주요 곡을 한국 초연하고, 말러·브루크너·스트라빈스키 시리즈 등을 통해 레퍼토리를 계속 넓혔다. 실력이나 노력이 아니라 ‘짜웅’으로 버티려고 해서는 한국 오케스트라의 미래는 어둡다.” (대전시향측은 내년 상임 지휘자 없이 객원 지휘 체제로 운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