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길 대로변에 나부끼던 국제결혼 알선 불법 현수막들이 어느 사이 싹 자취를 감추었다. 며칠 전 충남 홍성에서 국제결혼정보업체의 불법 현수막을 철거하는 행사가 매스컴에 보도된 후의 일인 것 같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100% 후불제 환불 가능”, “A/S(애프터서비스) 있습니다”, “베트남 며느리는 착해요”,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등의 글귀가 눈에 잘 띄는 야산의 나무 사이에 걸어 놓은 플래카드에 독버섯처럼 피어 있었다. 보다 못해 경찰서에 신고해도 그때뿐, 며칠 있으면 다른 곳에 다시 버젓이 걸려있곤 했다. 피부색을 들먹여서 한국인과 너무나 닮았다는 몽골 여성, 말이 통하는 한족, 착한 베트남 며느리 등 불법 현수막들은 각 나라 여성들의 특징을 선정적이며 반인권적인 상품광고로 바꾸어 놓았다.

10여 년 전부터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남성들이 결혼 상대를 구하기 힘들어서 알음알음으로 외국인 신부를 맞이하던 일이 이제는 결혼정보회사들의 주요 사업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5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만 들이면 결혼이 가능하다고 하니, 속수무책으로 나이만 들어가는 아들의 혼사를 걱정하던 노부모들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급속도로 국제결혼이 농촌지역에 확산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정부에서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최근 갑자기 국제결혼 이주 여성들을 위한 각종 정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사회복지정책으로, 여성정책으로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는 경쟁적으로 외국인 여성들과 가족을 대상으로 교육과 상담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한국말 배우기, 한식 만들기, 전통예절 배우기 등과 같이 훌륭한 프로그램들도 수강생을 모집하느라 동분서주해야 하는 실정이다.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살림도 해야 하는 외국인 신부들이 남편과 시집 식구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시내나 읍내까지 일정한 시간에 나올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시간이나 정신적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동족끼리 모이는 친목 모임에 나가는 것을 더 선호한다.

국제결혼 이주민 가정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가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주먹구구식에다가 뒷북을 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세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10여 년 전 한국 땅에 처음 발을 디뎠던 외국인 신부들이 쑥쑥 자라나는 아이들 덕분에 어느새 중년의 학부모가 되었고, 마을 부녀회의 회원들이 되었다. 그런가 하면, 우후죽순처럼 생긴 국제결혼 알선단체를 통해서 들어온 어린 신부들은 농촌만 아니라 도시에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국제결혼 이주 여성이라고 해서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서 보는 황소걸음식 복지 위주의 정책으로는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외국 여성들의 이주 시기에 따른 격차도 생겼고, 민족별 차이도 있고, 무엇보다도 각 가정마다의 차이도 크다.

그러나 정부가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세우고, 개개인들이 이들과 더불어 살 자세만 있다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 호들갑스러운 걱정이나 호기심보다는 보이지 않는 속에서 베푸는 세심한 사랑과 이해만이 다민족사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 외국인 신부가 한국 남편의 아내로, 자녀들의 학부모로, 마을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각자의 마음을 여는 일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외국인 혐오증이 있다는 불명예가 사라지는 날, 우리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다민족국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