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가 추진 중인 ‘민족문화 원형 발굴 및 문화 정체성 정립 기본 10개년 계획’ 이 편향된 민족주의의 색채로 왜곡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8일 문화부가 후원한 ‘고대에도 한류가 있었다’ 학술대회가 대표적 사례다.
이 10개년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임재해 안동대교수(민속학)는 비교민속학회와 한국구비문학회의 학회장을 맡고 있는데, 두 학회가 바로 ‘고대에도 한류가~’를 주관했고, ‘ 민족문화의 원형과 정체성 정립을 위한 학술대회 1’이라고 스스로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학술대회의 요지는 “고대에는 우리 문화가 중국이나 일본 등 주변 문화보다 상대적으로 앞서 당시 이미 ‘한류’가 존재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비과학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주장이 너무 많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먼저 임교수는 학술대회에서 한국 고대 문화의 선진성을 주장하고, “구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문화적 우위가 더 잘 드러난다.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30만년 전 아슐리안형 석기가 출토됐는데, 이는 아시아지역에서 가장 발달했다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발굴된 볍씨는 1만5000년전 재배 볍씨임이 과학적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임교수 주장대로라면 충북 청원군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벼농사지역이 되는 셈이다. 세계 학계는 벼농사가 지금으로부터 1만 년 전쯤에 시작됐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임교수의 주장에 대해 전곡리 유적을 직접 발굴했던 배기동 한양대교수(구석기)는 “중국 광서성 백색(白色)유적이나 황하 중류 남전유적 등에서도 모두 아슐리안형 손도끼가 나왔는데 중국에서는 70만~80만년 전 것으로 주장한다”며 “전곡리유적이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되거나 발달했다는 주장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배교수는 또 “지금부터 1만5000여년전 한반도는 무척 추운 때에 해당하는데 (아)열대 1년생 식물인 벼를 재배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허문회 서울대명예교수(농학)도 “중국에서도 호남성 옥섬암유적에서 1만2000년전 재배볍씨가 출토됐다고 주장했지만 세계학계가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소로리볍씨가 출토된 주변 지역에서 경작 흔적이 발굴된 것도 아닌데 재배 볍씨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이며 학문하는 태도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박선희 상명대교수의 글도 비판에 올랐다. 박교수는 “청동기문화는 황하유역에서 서기 전 2200년경 시작됐고, 시베리아 카라수크문화는 서기전 1200년경, 그리고 고조선은 서기전 2500년경에 시작됐다”며 고조선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이른 청동기문화를 이뤘다고 주장했다. 박교수는 북한 사회과학원의 논문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이건무 용인대교수(전 국립중앙박물관장·청동기전공)는 “북한은 주체사상에 따라 고조선이 서기전 2333년 평양에서 건국했다고 주장하는 나라”라고 전제, “세계 학계에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비과학적 연대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또 “고조선이 (박교수 등의 주장처럼) 4000여년전 그렇게 넓은 땅을 지배했다면 중앙집권체제가 확립됐어야 할 텐데 빗살무늬토기인들의 수준으로 그것이 가능하냐”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