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유리 겔라를 기억할 것이다. 1980년대 한국을 방문, TV방송에서 수저를 구부리거나 고장난 시계를 고치는 등의 초능력을 선보여 모두를 놀라게 했던 그.

당시 유리 겔라의 초능력 시연 모습이 방송 전파를 탄 다음날은 집, 학교, 회사할 것 없이 수저 하나 들고 열심히 손으로 문지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때 유리 겔라의 초능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후 사기니 조작이니 여러 말들이 나오면서 조금씩 사그라들긴 했지만 당시 유리 겔라의 모습은 신드롬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대단했다.

솔직히 눈 앞에서 수저를 구부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그대로 맞추는 모습에 누군들 놀라지 않을까.

염력을 이용한 '수저 구부리기'가 유리 겔라가 놓지 않고 하던 단골 메뉴였다면 방청객의 생각을 읽는 독심술은 가끔만 보여주던 특식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유리 겔라의 초능력 시연이 사기라는 과학적 연구가 발표되기도 하고 조작이라는 주장이 꼬리를 물기도 했지만 시나이사막 9000m 상공을 날아가는 전투기 속에서 조종사가 그린 그림을 지상에 있던 사람이 거의 동시에 똑같이 그려낸다면 누가 그 사람을 향해 평범한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물론 전세계를 상대로 사기극을 벌이는 간큰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존재하긴 하지만.

AP통신은 8일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던 유리 겔라의 최근 모습과 그의 일생을 다시 한번 조명했다.

유리 겔라는 최근 고국인 이스라엘에서 다시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는 20일 60세를 맞는 이 반백의 초능력자는 이스라엘 TV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의 후계자를 물색하고 있다.

9명의 참가자가 누구의 초능력이 더 대단한가를 겨루는 프로그램 '후계자(The Successor)'는 이스라엘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참가자들은 방송을 통해 방청객의 머리 속을 읽거나 방청객의 뇌에 명령을 내려 실제와 다른 맛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소금을 먹고 달다고 답하게 만든다든지 설탕을 먹고 짜다고 말하게 하는 식이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는 최근 이스라엘의 한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여실히 증명된다. '후계자'에서 한 참가자가 자신의 심장 박동을 수초 동안 멈추는 초능력을 선보인 다음날 이스라엘의 초등학교에서는 10살짜리 학생이 스스로 심장박동을 멈춰보려다 혼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살바도르 달리, 마이클 잭슨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유리 겔라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까지 자신이 변합없이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 세계가 유대교를 바라보는 신비주의 시선에 힘입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유리 겔라는 AP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른바 카발라(유대교의 신비주의 교리)가 자신의 성공에 커다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고대 신비주의가 성모마리아를 소재로 한 그림이나 조각 등 예술을 통해 표출됐던 것처럼 유대교 신비주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전세계의 지대한 관심을 받아왔다며 이같은 관심이 자신의 활동의 밑거름이 됐다고 전했다.

어찌 보면 그의 초능력 시연 장면은 환각과 교묘한 손놀림에 약간의 초자연적 능력을 가미해 만들어진 '조작된 드라마'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말처럼 이같은 드라마를 사람들이 사실로 믿도록 하는 바탕에는 유대교 신비주의가 깔려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불세출의 '초능력' 스타로서의 그를 부정할 수는 없다. 누가 뭐라 해도 유리 겔라는 금세기 아니 사상 최고의 초능력 스타라고 할 수 있다.

유리 겔라는 1946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후 10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키프로스로 이사를 간다. 낙하산부대원으로 복무 중이던 1967년 '6일전쟁'에 참가, 부상을 입기도 한 그는 이후 담시 패션모델 일을 하다 파티나 행사 등을 돌며 초능력을 보여주는 일에 뛰어든다.

예의 조작, 사기 비난 속에서도 명성을 쌓아가던 그에게 닥친 첫번째 큰 시련은 본격적인 세계 투어를 시작한 직후. 미국 방문 당시 유리 겔라는 자니 카슨쇼에 출연했다. 단번에 이름을 알릴 수 있는 최고의 기회였지만 이 기회는 오히려 그에게 최악의 재앙이 됐다. 스켑틱(Skeptic, 회의론자, 여기서는 초자연적 현상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들에 둘러싸인 유리 겔라는 진땀 속에 주무기인 '수저 구부리기'마저도 실패한 채 무대를 내려와야 했다. 당연 그의 초능력에 대한 신빙성은 하루 아침에 추락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장소를 영국으로 옮겨 '수저 구부리기'를 시도했고 이번엔 성공, 드디어 스타덤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돌며 초능력 알리기(?)를 실천했고 이에 따른 부수입으로 백만장자가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리 겔라의 초능력이 더 이상 신기한 것으로 비춰지지 않게 되자 그의 인기 역시 주춤해졌다. 그러나 그동안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유명인이 됐고 16권의 책을 발간, 중견 작가가 되기도 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 오똑한 콧날, 앵두같은 입술, 잡티 하나 없는 백옥같은 피부, 환상적인 몸매 자랑하는 꽃미남, 꽃미녀들을 동영상 캡처 사진 하나로 우스개거리로 만들어버리는 요즘 세상에서 데뷔했다면 그는 지금의 위치에 이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잠시나마 초능력의 환상-사실이든 조작이든간에-을 탐닉하게 해준 그이기에 더더욱 친근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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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닷컴 아이디 donclekim 님께서 작성한 100자평 중
 'Randy'를 'Randi'로 바로잡고, 책 이름도 'Flim-Flam'으로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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