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트(orient)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동방’ ‘빛’이라는 뜻 외에도 ‘표준에 비추어 수정(교화)하다, 적응시키다’라는 뜻이 있다. 신입생, 신입사원이 받는 오리엔테이션이 오리엔트라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인 것을 보면 오리엔탈리즘의 속뜻이 감지된다. 서구가 비서구를 열등한 대상이라 규정짓고 가르침을 받아야 할 신입생, 어린아이 같은 존재로 간주한 것이 오리엔탈리즘의 실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며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스타일’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제국주의 프로젝트와 맞물려 추진되었으며 백인의 우월함을 확신하는 표상 체계가 되었다. 제국주의는 문화제국주의로 탈바꿈하였으며 문학의 서사는 영화의 장면화로 전이되어 오리엔탈리즘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왕과 나’ ‘아라비아의 로렌스’ ‘마지막 황제’ ‘티벳에서의 7년’ ‘미션’ 그리고 ‘아마겟돈’ ‘인디펜던스 데이’ 같은 외계 SF 영화에 이르기까지 오리엔탈리즘은 다양한 장르에서 드러난다. 이 중에서도 롤랑 조페가 만든 ‘미션’은 오리엔탈리즘과 제국주의의 상관관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영화 ‘미션’은 교황청 특사의 회상으로 시작된다. 자신의 말을 기록하는 사제에게 “시작이 맘에 안 드는군!”이라며 말을 바꾸고, 시기도 1750년에서 1758년으로 늦춤으로써 역사 ‘왜곡’의 의도를 의도적으로 내비치는 점도 흥미롭다. 가파른 절벽을 오르는 가브리엘 신부(제레미 아이언스 분)가 보일 때 “예수교도는 음악을 통해 복음을 전파했다”라는 내레이션이 오보에 선율 속에 이어진다.
한편 노예 사냥꾼 멘도사(로버트 드니로 분)가 인디언을 밧줄에 엮어 끌고 가는 모습도 등장하는데 이는 종교적 미션과 제국주의 사명이 부딪칠 것임을 암시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중반은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남미에서 식민 사업을 다지던 시기다. 제국주의 미션과 선교회 미션이 상반되는 듯해도 이 둘은 역사적으로 볼 때 동일한 출발선상에 있었다.
둘을 연결하는 표상 체계는 바로 오리엔탈리즘이다. 제국주의 상인들 앞에서 인디언이 사람이냐 아니냐를 판정할 때 인디언을 변호하는 사람이 인디언 자신이 아니라 백인 신부 가브리엘이었다는 점을 눈여겨보라. “그들은 스스로를 말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그들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열등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시키는 장면이다.
제국주의 군대가 발포하는 대포에 맞서 한 사람은 무기를, 또 한 사람은 성체를 들고 저항하는 장면을 교차 편집으로 극명하게 대비시켜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마지막 부분, 벌거벗은 아이들만 살아남아 악기를 들고 떠나는 장면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문제의 핵심이 제국주의 침략 자체라는 점을 뒤로하고 무지한 인디언, 미성숙한 어린 아이들을 부각시킴으로써 물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우월한 백인을 증명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인디언을 몰살시킨 제국주의자와 같은 백인임에도 불구하고 인디언을 위해 희생했던 일부 선교사들의 휴머니즘을 부각시킴으로써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 ‘미션’에 보이는 오리엔탈리즘의 긴 그림자는 21세기에도 자취를 감추지 않는 문화제국주의 미션을 보는 듯하다.
살펴볼 용어: 오리엔탈리즘
역사적으로 볼 때 지리상의 발견 이후 서구 제국주의는 침략의 당위성을 얻고 동시에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하고 자신의 우월감을 입증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해졌다. 즉 서양을 우월성으로, 동양을 열등성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창조해냈는데, 이런 서양의 왜곡된 시각을 에드워드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라 명명했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 제국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동양을 주로 관능적이거나 나약한 여성 혹은 미숙한 어린애로 여기고 지배 대상으로 간주하며 가부장적 남성상을 공고히 해왔다면서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함께 나눌 이야기
1. 왜 제국주의가 사라진 현재에도 오리엔탈리즘이 문제시되고 이를 경계해야 하는지 생각해보자.
2. 현실로 돌아와 우리 나라에서 탈북자, 혹은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의 이중적 잣대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를 곰곰이 따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