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년 중국 광둥(廣東)성. 과거 응시생인 23세 청년 홍수전(洪秀全·훙슈취안)은 2차 시험에서 낙방한 뒤 몸이 쇠약해져 사경을 헤매다 꿈을 꾼다. 하늘에 올라가 천상의 '아버지'와 '형'을 만나 자신이 세상의 요괴를 몰아내고 인류를 구원하는 사명을 부여 받았음을 알게 된 것! 몇 년 뒤 기독교 선교용 책자 '권세양언'을 읽은 그는 꿈에 나온 '아버지'와 '형'이 다름아닌 여호와와 예수였음을 깨닫는다.
이제 그는 상제(上帝)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지상낙원을 건설해야 했다. '요괴'는 바로 청나라. "세상이 뒤집어진다 해도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던 비밀결사와 비적, 소작농과 노동자와 천민, 재야지식인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1851년, 홍수전은 스스로 천왕(天王)에 등극한다. 처음에 기독교 일파인줄 알고 호의를 가지던 서구 열강들이 기겁을 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태평천국(太平天國)을 '중국 청나라 말에 일어났던 반란' 정도로만 이해한다면 너무나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그것은 동양근대사의 한 장(Chapter)을 이루는 거대하면서도 기이한 사건이었다. 13년 동안 중국 남부의 대부분을 지배한 사실상의 왕조나 다름없었으며, 2000만 명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인명이 희생된 대재앙이었다. 중국공산당은 '사회주의의 뿌리'로까지 보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 중국사학자로 예일대 교수인 저자는 동·서양의 거의 모든 1차 사료를 치밀하게 해석한 뒤 소설을 방불케 하는 흥미로운 필치로 이 '매혹적인' 사건에 접근한다. 난(亂)일 수도, 변혁운동일 수도 있는 이 사건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양민이었다. 초인적인 인내심과 상상을 초월한 작전 능력을 발휘한 태평천국의 지도자들은 또한 욕망에 눈이 멀어 동지를 배신하고 죽이던 형편없는 소인배이기도 했다. 저자는 말한다. "모든 걸 새롭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은 사람들이 그 대가를 주의 깊게 계산하지 않음으로 해서 역사의 고통은 시작된다."
입력 2006.12.01.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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