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의 여덟 개 행성 중에서 가장 보기 힘든 것이 바로 수성이다. 수성은 행성 중에서 크기가 가장 작을 뿐 아니라 태양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대에는 수성을 보게 되면 장수를 한다는 전설이 있었고, 그 결과 수성(水星)을 장수를 뜻하는 '수성(壽星)'으로 부르기도 했다.
오는 9일 아침 수성과 관련된 보기 드문 우주쇼가 펼쳐진다. 수성이 태양 앞을 통과하면서 검은 점으로 보이는 수성의 일면통과(日面通過)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수성이 워낙 작아 눈으로 관측하기는 어렵다. 수성의 지름은 약 4900㎞로 태양(약 140만㎞)에 비해 1/290 정도에 불과하며, 거리를 감안하면 9일 지구에서 볼 때의 수성 지름은 태양의 1/194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망원경으로 태양을 보면 동그란 작은 구멍 하나가 뚫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구멍은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해서 오전 9시 10분쯤 태양의 서쪽 모퉁이를 빠져 나오게 된다. 망원경으로 관측할 때는 태양빛을 충분히 줄일 수 있는 필터를 장착하거나 간접적으로 태양을 투영시켜 보면 된다. 배율은 약 50배에서 100배 정도면 가능하다.
수성은 약 88일을 주기로 태양을 공전한다. 수성의 공전 궤도와 지구의 공전 궤도가 일치한다면 수성이 태양과 지구 사이를 통과할 때면 매번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5월과 11월에만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수성의 공전면과 지구의 공전면은 7도 정도 어긋나 있다. 태양과 지구를 기준으로 본다면 수성의 궤도는 매년 5월 8일과 11월 10일을 전후해 지구의 공전 궤도와 같은 면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이때 태양, 수성, 지구가 일직선이 되면서 수성의 일면통과현상이 일어난다. 달의 공전 궤도가 지구의 공전 궤도와 일치할 때에만 일식과 월식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흥미로운 점은 수성이 태양의 일부를 가리는 현상은 5월보다는 11월에 더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수성 움직임의 가장 큰 특징은 굉장히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돈다는 것이다. 즉 태양에 가까이 있을 때와 멀어졌을 때의 거리 차이가 크다. 행성이 태양에 가까워졌을 때에는 태양의 중력을 이기기 위해 공전 속도가 빨라진다. 반대로 태양에서 멀어졌을 때는 공전 속도가 느려진다.
5월 8일쯤에는 수성이 태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지점 근처를 지나게 된다. 즉 수성의 움직임이 매우 느려진 상태이다. 따라서 지구가 수성 궤도와 일치하는 지점에 도달했을 때 수성이 그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확률이 그만큼 작아지게 된다.
반대로 11월 10일쯤에는 수성이 태양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하는 지점 근처에 있게 된다. 이때는 수성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매우 빠르므로 지구가 수성 궤도와 일치하는 지점에 왔을 때 수성이 그 지점을 통과할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다. 그 결과 수성의 일면통과현상은 5월에 비해 11월에 두 배 이상 더 자주 관측된다. 대신 5월에는 수성이 태양에서 제일 멀고 지구와 가까워졌을 때이기 때문에 11월에 비해 수성의 크기가 조금 더 크게 보이고 움직이는 속도도 느려지게 된다.
수성은 이처럼 까다롭게 태양 앞에 선 모습을 보여준다. 게다가 낮에만 볼 수 있으므로 그 기회는 더 줄어든다. 우리나라에서 수성이 태양을 지나가는 현상을 볼 수 있는 기회는 2032년에나 다시 오게 된다. 놓치면 26년을 기다려야 할 귀한 우주쇼가 아닌가.
(이태형·충남대 천문우주학과 겸임교수 ·㈜천문우주기획 대표이사)
입력 2006.11.0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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