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더 멀리 보아왔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1676년 현미경으로
세포를 처음 관찰한 것으로 유명한 로버트 훅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의 이 한마디는 과학과 과학이 이룩한 문명 전체가 그 이전에 이뤄진 성과 위에 새롭게 구축되는 일련의 누적적인 진보라는 점을 표현해주는 경구(警句)가 됐다. 그리고 겸손하게 앞선 이론을 연구하고
거기에 자신의 발견을 보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위대한 과학자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로 꼽히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스티븐 호킹 교수가 지은 이 책은 뉴턴,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아인슈타인과 같은 과학 거인들의 생애를 먼저 소개한다. 그리고 이어 세상을 놀라게 한 그들의 업적을 담은 대표 저서의 핵심 부분을 직접 소개한다.
눈치 빠른 독자는 뉴턴이 겸손하기보다는 동료 과학자들의 성과에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조바심 내는 모습을 알아챌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늘 낙제생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외톨이로 지냈고, 갈릴레오는 후원자인 교회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애 쓰며 망원경 같은 신기한 물건으로 환심을 샀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뉴턴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거인들은 한번도 앞선 과학자들과 동료들의 연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어깨 위에 서려고 했다. 갈릴레오는 사실 종교재판정을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누가 읽을지 모르는 장문의 글을 쓰는 수고를 택했다. 또 피사의 사탑에서 이뤄진 실험 결과로 끝내지 않고 한편의 법정 드라마와 같은 장문의 논쟁 기록을 남겼다.
호킹이 굳이 난해한 원전을 소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턴의 운동법칙은 고교 교과서에서 단 한 줄의 수식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그가 쓴 원전을 보면 수식 하나 없이 오로지 도형과 기하학만으로 그 모든 얘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상과 한 판 승부를 벌이는 위풍당당함은 없었을지라도 자신들의 뒤를 이을 누군가에게 내어줄 어깨만은 튼튼하게 다지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괴테는 "코페르니쿠스의 학설만큼 인간 정신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경우는 다시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다른 거인들 또한 단순히 기존의 과학이론을 반박하는 수준이 아니라 당대 정신세계의 토대를 뒤집는 주장을 한 사람들이다.
저자인 호킹 교수는 로저 펜로즈와 함께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이 20세기의 또 다른 과학적 성과인 양자론과 통합해야 함을 주창했다. 그 역시 '거인의 어깨 위에서' 새로운 지평을 본 셈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무도 못 본 것을 봐서인지 온몸 근육이 마비되는 루게릭 병이란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한때는 손가락 두 개는 움직일 수 있어 느리지만 자신의 생각을 나타낼 수 있었는데 요즘엔 눈동자로 겨우 컴퓨터 커서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온 몸이 구속된 거인이 들려주는 얘기라고 생각하면 어려운 내용도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책 군데군데 나오는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과 기록사진, 그림이 지루함을 덜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