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소설 '당신들의 천국'의 주인공인 '조백현 대령'의 실존 모델인 조창원(80) 전 국립 소록도 병원장이 특별한 미술 작품들을 빚어 세상에 선보였다. 조씨는 40년 전 병원장 시절 외딴 섬에서 함께 지낸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과 눈물을 형상화한 그림과 조각 작품들을 오는 27일까지 서울대병원 구내 함춘회관에서 전시하고 있다.

1961년부터 3년간 군의관(육군 대령)으로 소록도병원에서 근무한 조씨는 당시 환자들과 함께 오마도 간척사업을 실시하고, 한센병 환자들로 축구단을 만들어 축구대회에 참가, 우승컵을 안겼다. '당신들의 천국'은 당시의 사연을 소재로 쓴 것이다.

소록도 병원장을 지낸 조창원씨가 한센병 환자와 결혼한 간호사들을 천사에 비유한 작품‘천사의 눈물’앞에서 그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 출신 의사들의 회화 작품을 전시하는 이번 전시에 조씨는 4회(1950년) 졸업생자격으로 그림을 출품했다. 조씨는 "의사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한센병 환자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것을 반성하고 후배 의사들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한센병은 공기로는 전염되지 않고, 상처 난 피부를 통해서만 전염됩니다. 그런데도 소록도에 부임한 의사들이 환자를 격리하고, 부모와 자식을 생이별하게 만드는 등 마치 병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했습니다." 조씨는 "소록도에 부임해 보니 의료진조차 한센병의 전염경로를 알면서도 육지와 섬을 오갈 때 환자와 같은 배에 타기를 거부하더라"고 말했다. 조씨는 의사들의 이런 행동이 일반인들의 한센병에 대한 공포를 자극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1945년 84명의 한센병 환자들이 사망한 '소록도 학살' 사건 등 한센병 환자들에게 자행된 갖가지 인권 말살 행위도 의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은 유화 5편과 조각 1점. 소록도 환자들이 산 채로 화형당한 사건을 그린 '소록도 대학살', 공기전염이 되지 않는데도 환자인 부모와 정상인 자녀를 면회할 때 큰길을 사이에 두고 만나게 한 장면을 그린 '소록도의 눈물', 한센병 환자들을 돕다 그들을 사랑하고 결혼까지 한 13명의 간호사들이 겪은 고난을 형상화한 '천사의 눈물' 등이다. 또 '당신들의 천국'에 소개된 오마도 간척사업에 얽힌 사연은 '잃어버린 당신들의 천국'이란 그림으로 기록했다.

조씨는 1990년부터 한센병 환자들을 소재로 유화를 그려왔다. 1996년 일본의 한센병 기념관인 다카마쓰노미아 기념관에서 그림 60점을 전시한 뒤 이 기념관에 전시작품을 기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