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라디오 스타' 시사회 직후 감칠맛나는 연기를 펼친 한 여배우에게 눈길이 갔다. 순간 '누굴까?'하는 물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삼순이의 수제자"라는 말을 듣고 '아!'하고 탄식이 나왔다.
한여운(22). 당돌하면서도 사랑스러운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녀가 스크린에 데뷔했다. 그것도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안성기-박중훈 등 국민배우가 열연한 '라디오 스타'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다. 한여운이 맡은 배역은 백치미 넘치는 영월 청록다방의 김양. 커피만 시키면 어디든지 달려가는 그녀는 커피 배달을 갔다가 깜짝 DJ로 변신, '웃음과 눈물 폭탄'을 선물한다.
한여운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과 '투명인간 최장수', 뮤지컬 '피터팬'을 통해 연기자로서 막 걸음마를 뗐다. 배우인생 50년에 접어든 안성기는 "첫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떨지 않아서 대견하고, 연기력이 훌륭하다"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준비된 신인의 스크린 데뷔 뒷얘기를 들어봤다.
◆오디션 쿠데타
연기 경력이 일천하다보니 한여운은 아직 오디션 인생이다. 작품마다 오디션을 본 후 캐스팅된다. '라디오 스타'도 그랬다. 한데 오디션 도중 한여운은 '사고'를 쳤다. 이준익 감독이 "이미지가 다방아가씨 같겠냐"고 쏘아붙였다. 대감독의 '호통 질문'에 당황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그럼 다방아가씨는 늘 얼굴에 점찍고 껌을 씹어야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신인 연기자의 쿠데타였다. 눈밖에 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당찬 모습이 이준익 감독의 마음을 흔들었다.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는 "'도마뱀'의 오디션에서 한여운을 먼저 보고 '라디오 스타' 김양 역에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짧은 오디션에서 김양의 캐릭터를 정확히 표현해 놀랐다"고 칭찬했다.
◆안성기-박중훈 오빠!
30 대 초반의 웬만한 연기자도 안성기와 박중훈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못한다. 안성기는 57년 '황혼열차'에서 아역으로, 박중훈은 86년 '깜보'를 통해 데뷔한 대선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84년생인 한여운은 영화를 찍는 동안 안성기와 박중훈에게 '오빠'라고 불렀다. 간이 배밖으로 나오지 않고서는 신인의 몸으로 입밖에 낼 수 없는 호칭이다. 하지만 이는 그녀 만의 특권이었다.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극중의 호칭으로 불러야 영화가 잘 된다는 대선배들의 조언 때문에 한여운은 내키지 않는 '오빠'를 사용했다. 물론 영화가 촬영이 끝난 후에는 "선배님 혹은 선생님"으로 깍듯하게 부르고 있다.
◆명문대생 그리고 연기
자신을 "맹하다"고 소개한 한여운은 연세대에서 철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 철학은 막연하게 하고 싶었고, 심리학은 점수가 잘 나와서 택했다고 한다. 03학번인데 연기를 위해 2년간 휴학해 현재 2학년에 재학중이다. 부모의 반대도 심했다. 어머니는 딸을 사랑하는 마음에 "그 얼굴로 어떻게 뜨겠느냐"며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 욕심은 누구도 막지 못했다. 한여운은 "연기를 하는 순간 살아있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흥행도 몰고 다닌다. 드라마 데뷔작인 '내 이름은 김삼순'이 그랬고, '라디오 스타'도 대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은 닥치는 대로 연기를 할 거예요. 나중에 내공이 쌓이면 거침없는 성격 연기도 해보고 싶습니다." 스크린에 첫 신고식을 치른 한여운의 연기 인생이 기대된다.
(스포츠조선 김성원기자)
입력 2006.10.0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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