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

중국정부가 이달 초 백두산 들머리인 지린(吉林)성 안투(安圖)현 길가에 '발해는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란 내용의 대형 표지석을 세웠다는 조선일보 11일자 1면 머리기사를 보았다. 역사왜곡과 날조를 자행하는 중국정부도 그렇지만, 국가적 존엄성과 민족적 자존심은 팽개쳐버린 채 수수방관해 오다시피 한 우리 정부에도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중국의 역사왜곡과 날조는 단순히 역사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웃 나라의 역사를 날조하다 못해 이제는 아예 강탈하려는 것은 총성 없는 전쟁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이 무력전과 다른 것은 선전포고가 없고, 그 무기가 역사라는 학문이며, 군사는 관변 사학자와 공무원이란 점 등이다. 그러나 그 상층부에는 중국정부가 도사리고 있으니 이를 어찌 중국의 일개 연구기관이나 '지방정권'의 소행으로 덮어둘 수 있겠는가.

중국이 5년간 막대한 예산을 퍼부어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목적이 뭘까. 첫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동북지방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운동을 예방하려는 것으로 추측된다. 둘째는 김정일 정권이 붕괴되면 북한에 연고권을 주장하여 군대를 주둔시키거나, 아예 지방정권이나 괴뢰정부를 세우려는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정부가 동북공정이니 서남공정이니 또는 단대공정이니 하며 중국사 정비에 열을 내는 이유는 결국 소수민족들의 봉기로 중국이 다시 남북조시대나 5호16국시대처럼 분열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과연 고구려는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던 지방정권'이었을까. 고구려의 역사는 BC 37년 건국부터 668년 망국까지 28왕 705년을 유지했다. 그동안 중국 땅에는 후한부터 당까지 무려 33개 나라가 저마다 황제국을 자처했는데, 200년 이상 지탱한 나라는 단 하나도 없었다. 가장 오래 간 나라가 196년을 유지한 후한이요, 그 다음이 103년인 동진이다. 심지어는 왕이 1명뿐인 남북조시대의 동위나, 겨우 7년 만에 망한 후량 같은 하루살이 제국도 수두룩했다.

고구려가 '속국'으로 있는 705년 동안 중국에선 33개 나라의 흥망이 무상했으니,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본국'이 어찌 있단 말인가.

정작 중국이 이처럼 역사왜곡·날조와 탈취에 집착하는 데에는 더 큰 이유가 있다. 중국사를 돌이켜볼 때 중국의 다수민족이란 한족(漢族)의 역사는 별 볼일 없었기 때문이다. 한족이 세운 나라는 진과 한, 그리고 동진 이후 송과 명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성세를 자랑하던 중국사의 대부분은 화하족(한족)이 동이·서융·남만·북적이라 부르며 멸시하던 '오랑캐'의 역사였던 것이다.

2004년 8월의 이른바 '구두양해'란 신사협정만 믿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정부의 각성을 촉구한다. 한중고대사를 연구할 기구를 정비하고 인력을 확보하여 국가 생존전략 차원에서 동북공정에 대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젠가는 정말로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