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로 번역되면 아사코도 그 소식을 듣게 되겠지요?"

첫 사랑 소녀 아사코와의 가슴 아린 세 번의 만남을 회상한 금아(琴兒) 피천득(96)의 수필 '인연'(샘터 출판사)이 일어로 번역돼 일본 독자들을 만난다. '인연'은 그간 영어와 러시아어로 소개된 바 있지만 일어로 번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천득 선생이 1974년 문예 월간지 '수필문학'에 이 수필을 발표한 지 32년 만이다.

피 선생은 7일 오전 서울 반포동 자택을 찾아온 일본 출판사 관계자들을 만났다. 일어판 '인연'을 출간하는 곳은 도쿄의 아루쿠(ALC) 출판사. '인연' '그날' '서영이' '5월' '만년' 등 16편을 '피천득 수필집'이란 제목으로 묶어 오는 18일 출간할 예정이다.

이 책을 일어로 옮긴 이춘자 고베(神戶)여자대학 한국어 강사는 "피 선생님의 우리말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한일 대역판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를 만든 곽재용 감독도 '인연'의 일어판 발간을 축하하는 띠지 글을 쓰기로 했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에게 수필집 '인연'을 선물하는 장면을 만들었던 것이 계기가 됐다.

피 선생은 고령으로 집필이 어려워 이날 일본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서문을 구술했다.

"일어판이 나온다니 대단히 기쁩니다. '인연'은 한국 교과서에 실려 많은 사람들이 읽은 수필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정서가 비슷해 서로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두 나라 국민들은 청빈 사상을 존중하고, 풍류와 멋을 압니다. 생각이 비슷해 표현하는 방법도 비슷하니 일본 독자들도 내 수필을 재미있게 읽어주길 바랍니다."

목소리 끝이 약간 떨리는 듯했지만, 피 선생은 조리 있게 서문을 구술했다. "음악을 즐기고 산책을 하며 건강을 지킨다"는 말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아사코와의 인연도 다시 언급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이민을 갔다지요? 살아있다면 지금 84세인데…. 샌프란시스코에는 일본인 이민자가 많으니 아마도 '인연'이 일어로 나왔다는 소식 정도는 듣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