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 난생 처음 가본 경찰서에는…"
"월드컵 경기장에서 기자들이 박수를 안치는 까닭은?"
숨가쁜 역사의 무대를 맨 앞 줄에서 지켜보지 않으시렵니까?
조선일보가 46기 수습기자를 모집합니다. 이제 막 ‘수습’ 딱지를 뗀 45기 선배 기자들이 ‘합격 비결’과 ‘기자 6개월’을 공개합니다. 한겨울 꽁꽁 언 손을 호호 불면서도, 마감시간의 긴장에 숨이 막히면서도 후배들에게 ‘손짓’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거 얘기 될까?”
기자가 되고 나서 처음 접한 말입니다. 처음엔 정말 생소했는데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해진 표현. 기획 아이템을 발굴하고 동기들끼리 주고받는 말이기도 합니다. 기사가 될 만한 ‘새롭거나 재미있는 면’이 있냐는 뜻이지요. 심지어는 어떤 사람이 매력 있는지 묻는 대신 “그 사람 얘기 돼?”라고 말한 기자도 있었습니다. 일종의 직업병일까요. 말한 사람을 비롯해 모두들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얘기가 되는지’를 따지는 걸까요. 그건 아마도 기자의 본업이 새로운 것(News)을 생산하는 일이기 때문일 겁니다.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내용이나 예전부터 늘 그래왔던 일이 화제가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 나누는 얘기를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기자가 되기 위한 시험을 치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일보 입사시험에는 현장평가가 있습니다. 오전 10시쯤 주제를 주고 취재한 뒤 오후 5시까지 회사에 들어와 2시간 동안 기사를 씁니다.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 하기 보다는 독자에게 유익한 정보와 재밌는 얘깃거리를 ‘전달’한다는 자세로 접근하면 방향을 잡기가 쉬울 것입니다. 채점위원은 참신한 내용의 글에 높은 점수를 준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100% 새로운 글을 쓴다는 게 가능할까요? 평소 신문이나 잡지를 읽으면서 아이템을 수첩에 정리 두고, 다른 관점에서 기사를 쓸 수는 없을지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선일보 고유의 표현도 알아두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3만5000원’으로 쓰는지 ‘3만5천원’또는 ‘35000원’인지 익혀두세요. ‘오후 2시쯤’으로 쓰는지 ‘오후 2시경’, ‘오후 2시께’인지는 이 글만 잘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최종 임원 면접에서는 엄청난 압박 면접을 각오해야 합니다. 사장을 비롯해 임원과 논설위원, 부장들이 원 모양으로 둘러 앉아 질문을 던집니다. 자기소개서를 여러 번 읽고 어떤 질문이 나올지 짐작해 보는 건 필수. 그렇게 준비해도 실제 면접에서는 예상 못한 질문에 당황하기 마련입니다. 저도 예리한 질문공세에 휘말려, 미리 준비한 멘트는 거의 못 하고 나왔습니다.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태연한 척 또박또박 말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잘은 몰라도 당당함과 솔직함이 결국은 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기자는 다양한 취재원을 만나야 하는데 그들 앞에서 위축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지요.
지금까지 쓴 취재수첩을 다시 들춰보니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전화 번호, 성별, 나이, 직업, 그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중에는 경찰도 있고 대학생, 국회의원, 마포 발바리, 검찰청 경비원, 다단계업체 피해자 모임 대표도 있습니다. 양평동 수재민들의 하소연, 고시원 화재로 3층에서 뛰어 내리다 다친 여대생의 사연, 역사와 전통을 속인 시계업체 취재 내용도 있습니다. 메모를 보니 그 당시 상황이 사진처럼 생생히 떠오릅니다. 이렇게 수첩이 하나둘씩 모이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만의 소중한 재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기자는 결코 편하고 쉬운 직업은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쓴 기사가 세상을 바꾸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짜 명품이 판치는 요즘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재능과 노력이 합쳐진다면 사치품이 아닌 진짜 명품의 힘을 보여줄 거라 믿습니다. 함께 일할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털모자. 손가락 장갑. 검정 볼펜 두 자루.
그 추운 겨울, 입사시험을 치르던 날, 이 세가지가 필요했습니다. 머리는 시리고, 손가락은 차갑고, 볼펜 하나는 그새 얼어붙었었거든요.
그간 정리해온 수첩이니 행운부적이니 모두 힘이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기자에게 필요한 것도 그 세가지인 것 같습니다. 머리를 너무 차갑지도, 너무 덥지도 않게 감싸줄 모자. 어떤 상황이라도 ‘활자’로 그려낼 수 있는 손. 그리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에도 대처할 수 있는 능력.
안녕하세요. 45기 김연주라고 합니다. 수습기자들에게 이 입사후기를 쓰는 일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지 모릅니다. 제 생각만 한다면 이 글에 너무 욕심을 부리게 될 것 같습니다. 수습의 수자는 짐승 수(獸) 자라고도 합니다. 짐승이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은, 허락하신다면 약간의 과장을 담아, 입사 후 만나서 나누도록 하지요.
시험후기입니다.
1. 서류 자기소개서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조선일보에 대해 무조건적인 순응도 무기력해 보이고, 빈약한 논리로 비판하는 것도 무딘 칼 같아 그저 솔직히 적었습니다. 대신 예를 들어 자세히 적었습니다. 언제 언제 이런 기사를 봤는데 그 부분이 어떠하더라, 이런 식으로요. 어떤 식으로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든,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2. 필기 영어는 토플 문제와 비슷합니다. 독해 지문은 토플보다 약간 더 난도가 높은 문제도 있었구요. 토플 단어와 문법 문제를 평소에 많이 풀어본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국어시험은 어렵지만 ‘괜찮은 시험’이었습니다. 지문도 참신하고 단순한 문법문제보다 논리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작문 주제는 ‘연설과 대화’였습니다. 논술과 작문을 한꺼번에 치는 타사 시험에 비해 시간이 그리 부족하진 않았습니다. 대신 다들 완성도가 높은 글을 쓰기 때문에 눈에 띄기도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참신한 인용’을 하려고 애썼습니다. 아무리 적절한 인용이라도 다 아는 얘기는 의식적으로 피했습니다. 작가 입센의 희곡 대사나 주제 사라마구의 문체 등 ‘ 아, 이런게 있었어?’ 생각이 드는 것을 최대한 써먹었습니다. 평소에 그런 ‘쓸거리’를 많이 저장해 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그럴듯해 보이는 내용을 떠올리긴 어렵습니다. 스포츠든, 영화든, 소설이든, 자기가 잘 아는 분야에서 찾아보세요.
3. 현장평가 3일 동안 직접 현장을 뛰며 기획기사, 기자회견을 담은 박스기사, 통계자료로 기사쓰기를 했습니다. 시험 전에 며칠 동안 기획기사를 많이 읽고 기사패턴을 읽혔습니다. 리드(서두)는 어떤 내용으로 시작하는지, 전문가 멘트는 어느 부분에 들어가는지 등 머릿속에 넣어둔 구성을 그대로 적용했습니다. 기획 아이디어는 평소에 ‘이런걸 적으면 좋겠다’ 리스트를 작성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 같습니다.
4. 면접 면접은 떨립니다. 나이가 지긋하신 면접위원 8분 앞에선 떨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떨지 말아야 합니다. 기자가 되려고 하는 이유에서부터 스크린쿼터제와 한미 FTA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최대한 당당하게 대답하려고 애썼습니다. 쩔쩔 매지 않고 평소 생각했던 것을 80%만 말할 수 있다면 성공한 면접이 아닐까 합니다.
마음만큼 도움이 됐을지 걱정입니다. 언제까지 시험공고에 마음을 졸여야 하나, 힘들어하는 분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털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시험을 쳤던 제가, 그 계절이 채 다시 돌아오기도 전에 이렇게 입사후기를 쓰고 있다는 걸 기억해주세요.
멀지 않은 날, 얼굴 맞대고 많은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2006년 3월 27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찰서란 곳에 가봤습니다. 기자실에 짐을 풀고 1층 폭력팀으로 내려가 힘겹게 철문을 열었습니다. "누가 함부로 들어오래요. 어떻게 왔어요?" 당직 데스크에 앉은 형사의 언짢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저... 조선일보 기자인데요..." 제 기자생활의 첫 문이 그렇게 열렸습니다.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45기 김영민입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경찰서를 돌며, 매 순간 핸드폰을 손에서 떼어놓지 못하는 ‘병아리 기자’입니다.
올해 1월은 제게 유난히도 추웠습니다. 서른이란 나이, 원치 않았던 직장, 포기할 수 없는 기자의 꿈으로 청춘이 막막했습니다.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실 겁니다. 입사 시험,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몰라 답답할 때가 많지요. 도전은 쉽지만, 포기하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시험을 다시 볼까, 아니면 지금 직장에서 승부를 볼까. 저 역시 갑갑함에 시달렸습니다.
그 때 만난 조선일보 공채 시험. 마지막 희망이자 도전이었습니다. 한 번의 기회를 꼭 붙들어 모든 미련을 밀어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2월말, "조선일보 인사부입니다"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눈앞이 흐려 두 눈을 꽉 감았던 그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기자란 직업, 쉽지 않습니다. 밤늦게까지 마신 술로 허우적거리다가는 타사에 ‘물을 먹거나(다른 언론사가 취재한 기사거리를 놓치는 일)’ 하루를 ‘공치게’ 됩니다. 취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가져다주는 뉴스, 흔히들 말하는 ‘보도자료 기사’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신문은 말 그대로 늘 새로워야 하고, 기자는 항상 신선한 뉴스거리를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부 기동팀 막내 기자는 새벽 6시면 어김없이 경찰서에서 눈을 뜹니다. 부지런한 타사 기자들도 벌써부터 분주합니다. 세수할 시간을 아껴가며 조금이라도 눈을 더 붙이려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노트북이 든 무거운 가방을 둘러메고 경찰서 폭력, 강력, 교통, 여청, 정보, 외사, 경비 등등 경찰서에 있는 부서란 부서를 몽땅 훑고 다닙니다.
그렇게 기사거리 챙기며 경찰서 서너 곳 도는 건 기본입니다. 또 다시 인터넷을 뒤지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약속을 잡습니다. 아직 어수룩하기만 한 기동팀 막내들이지만, ‘기자다운 기자’가 되겠다는 열정은 다들 똑같습니다.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다 해봅니다. 선배들을 곁눈질하고, 타사의 움직임을 살피고, 놓친 기사거리는 없는지 취재원에게 묻고 또 묻습니다.
기사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이 이렇게 다른 줄 예전엔 정말 몰랐습니다. 독자의 입장이었을 때는 신문을 읽으면서 ‘이 정도는 충분히 쓰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언론고시생들은 보통 기사 연습보다는 논술, 작문연습에 치중합니다. 친구들이 글 잘 쓴다고 옆에서 몇 번 칭찬해주면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 자판을 앞에 놓고 두려움부터 느낍니다. 세 줄짜리 스트레이트 기사 하나 쓰려고 해도 진땀이 납니다. 취재한 내용이 혹시 틀리진 않았는지, 나 혼자만 이해하는 글을 쓴 건 아닌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자다운 기자’의 가능성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 아닐까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다면 도전하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짜 기자’가 되겠다는 뜨거운 열정입니다. 열정만 있다면, 나머지는 책임지고 훈련시키는 멋진 직장이 바로 이곳 조선일보입니다. 현장을 누비며 세상을 밝게 비추고 싶다는 욕심으로 도전하세요. 여러분과 함께 지금이라도 당장 현장으로 달려가고픈 선배들이 여기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남’은 때로 뜻하지 않게 다가옵니다. 그것이 마음에 더 큰 풍랑을 일으킬 때가 있습니다. 사람과 만나는 것을 좋아해 기자를 시작한 제게 여러분은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무엇을 쓸까 고민하며 수습 일지를 읽었습니다. 중랑구를 이틀동안 돌아다녀 찾아낸 노숙자부터 헌법재판소 판결 후 멘트를 따기 위해 무작정 기다려야 했던 전효숙 헌법재판소장까지 다양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 속에 있는 얘기를 끌어내야 했고, 저는 진실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다가갔습니다. 제게 말해줬던 말할 수 없는 ‘사연’들은 기사가 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고된 수습생활이었지만 제게 마음을 줬던 분들이 떠올라 행복했습니다. 일지를 조금 공개합니다.
#4월 10일
노숙자를 찾으러 다녔다. 팔각정에 노숙자가 모여 있었는데, 이모씨와 관련해 얘기를 하고 있으니, 어떤 분이 “방울, 방울” 하며 나에게 왔다. 솔직히 나를 해칠까봐 겁이 났다. 오더니 “방울 토마토 좀 드세요” 하며 때가 낀 손으로 토마토 3개를 손에 쥐어 줬다. 그 분들도 잘 먹지 못할텐데 지나가는 나에게 주는 것을 보며 잘 먹고 다니는 나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노숙자’는 지저분하고 피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모씨를 찾으며 지나가는 노숙자들한테 거의 다 말을 걸어보니 대부분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일반인보다 정에 목말라 더 인간적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정말 부끄러웠다.
#4월 17일
유족을 취재하며, 동기는 울었다. 그런데 난 눈물이 나지 않았다. 별로 슬프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엔 멘트를 따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물론 소방관도 안됐고, 가족에게 동정심도 들었지만,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참 차가운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했지만, 현장에서 나는 내일 기사거리를 물어와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한 미안함은 기도로 대신하기로 했다. 수습기자 생활을 하며 처음으로 인간적 갈등을 느꼈다. 아직 수습인 나는 고민하기 이전에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기자가 돼야 한다. 언젠가는 접점을 찾아내는 날이 올 것이다.
자기소개서는 단점까지 솔직하게 썼습니다. 최종면접 때 자기소개서 내용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너무 길지 않게, 한자는 사전을 확인하고, 퇴고를 꼼꼼히 해야 면접 때 혼나지 않습니다.
필기는 국어의 경우 단편적 지식보다 주제의식, 맥락적 의미 등을 묻는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평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유리한 것 같았고, 시험 보기 전 유명한 소설이나 시 위주로 문학 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영어는 단어공부를 한 후 시험시간이 부족하므로 지문을 빨리 읽고 핵심 내용을 파악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대화와 연설’이 작문 주제였는데 이 분야에 평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는 ‘해리포터’와 ‘왕의 남자’가 권력에 대해 조롱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글을 시작해 대화는 쌍방향적이지만 연설은 일방향적이라고 썼습니다. 하지만 연설도 대화처럼 할 때 성공적일 수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은 대화마저 대화같지 않음을 비판했고, 서론을 언급하며 권위의식을 버리라고 썼습니다.
3차 시험 첫째날 집단 토론 때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한국 현대사에 미친 공과’와 ‘좋아하는 정치인’을 물었습니다. 신문을 읽으며 시사 쟁점을 정리했다가 말했습니다. 둘째날 10여군데의 장소 중 청량리역 근처 재래시장을 취재했습니다. 르포기사는 현장 묘사를 잘 해야 한다고 당시 문제를 내시는 분이 말했습니다. 셋째날 기획기사 주제 중 ‘시위 문화’를 선택해 연예인 스크린 쿼터, 평택 시위 등에서 상징물을 이용했던 현상을 촛불시위와 연결하고 시위에 참가했던 사람들과 교수에게 멘트를 따 썼습니다.
마지막 날 오전에 통계자료를 보고 기사를 썼습니다. 통계자료가 꽤 두꺼워 주제에 맞는 것만 골라 중요한 순서대로 썼습니다. 오후에 탈북자 출신인 강철환 기자를 응시자 다같이 인터뷰한 후, 차별적으로 쓰기 위해 역사 속 인물들이 강 기자의 말에 대해 토론하는 형식을 사용했습니다. 최종 면접 때 임원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겠다고 생각하며 들어갔고 공격 하실 때는 일단 수긍한 후 내 의견을 솔직하지만 예의바르게 얘기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웃으며 면접을 마쳤습니다.
너무 많이 ‘풀(공개)’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과의 만남이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런 만남이 됐지만, 이 기회에 지난 5개월을 돌아보며 행복했고, 열심히 취재하고 기사를 쓰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얘기를 들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조선일보에 들어와 이제는 여러분이 제게 ‘풀’ 해주세요.
2002년 월드컵 당시 상암 월드컵 경기장 한 편에서 기자석을 바라보았습니다. 천금 같은 골이 터질 때에도 미동 없이 다급한 손길로 키보드를 두드리던 기자들의 모습에 ‘언젠가는 저기에 앉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가진 대한민국과 세네갈의 평가전. 저는 드디어 그 자리에 앉게 됐습니다. 붉은 악마들의 함성과 선수들의 모습에 넋을 잃은 기쁨도 잠시. 선배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경기장 돌아다니면서 얘기 되는 것 찾아와!”
경기장이 왜 이렇게 넓은 건 지…. 취재 수첩을 든 손 바닥에 땀이 배고, 운동화와 경기장 바닥과의 마찰로 불이 붙을 즈음, 불현듯 한 외국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초조한 지 연신 세 잔의 커피를 한 자리에서 ‘원 샷’으로 들이키며 뚫어 지도록 경기장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정체가 궁금했습니다. 조심스레 다가가 말을 붙였습니다. 처음엔 경계하던 그 사람이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내가 바로 아드보카트 감독의 형이다!” 순간 정신이 멍했습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묻고, 또 묻고, 또 물었습니다. 한마디를 놓칠 새라 볼펜이 분주했습니다. 10분간의 취재를 마치고 선배께 보고를 드린 순간. 더 ‘멍’했습니다. “20분 안에 기사 써서 띄워!” 초조함이 극에 달했습니다.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붉은 물결이 내는 굉음이 귓속에서 아른거렸습니다. 그 때 어렴풋이나마 느꼈습니다. 왜 2002년 월드컵 당시 기자석의 선배들이 미동조차 하지 않았는지….
불과 세 달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엔 식은 땀이 날 정도로 초조했지만 지나고 나면 그 때 그 이야기는 신문 한 귀퉁이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런 것이 기자의 매력이 아닐까요?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45기 김현진입니다. 장황하게 저의 경험을 늘어 놓기는 했지만 이제 막 6개월 간의 수습 기간을 뗀 풋내기 입니다. 입사한 지 5개월도 안 돼 후배들에게 글을 쓰려고 하니 손이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2002년의 저처럼 어딘가에서 기자의 꿈을 키우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저의 ‘시험 경험담’을 알려드리겠습니다.
필기 시험은 국어와 영어, 작문입니다. 국어 시험엔 한자가 함께 출제됩니다. 제가 선택한 전략은 '선택과 집중'이었습니다. 먼저 가장 취약하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하나하나 '끝장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덤볐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과감하게 뒤로 미뤘습니다. '시간이 남으면 한다'는 생각이었죠. 우선 한자에 약했던 저는 한자 검증능력 시험 교재로 하나부터 열까지 손으로 썼습니다.
거의 일주일 동안 한자에 파묻혀 살았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얘기를 할 때도 한자 단어가 등장하면 그 자리에서 꼭 써보는 센스(?)를 발휘해 대화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착수한 것은 국어 시험 준비. 45기 전형 땐 백석 시인의 시 등 일반 문학 교재에서는 쉽사리 볼 수 없는 지문들이 출제 됐습니다. 따로 공부해도 단기간 안에 승부를 볼 수 는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항상 등장하는 맞춤법 문제에 집중하시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준비하시던 교재로 마지막 정리를 하세요. 다 안다고 생각해도 막상 시험장 안에 들어가면 늘 아리송한 게 맞춤법 시험입니다. 눈으로 훑는 것보다 직접 손으로 써서 익히는 게 훨씬 도움이 됩니다. 영어는 TEPS 문제집을 풀었습니다. 특히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기 때문에 지문 하나하나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그 안에 푸는 연습을 했습니다.
작문 연습은 꾸준히 해야 합니다. 혼자 제비뽑기 놀이를 하셔도 좋습니다. 저는 하루에 두 번, 시사와 관련된 단어나 전혀 ‘쌩뚱 맞은’ 단어를 쪽지에 써놓고 제비를 뽑은 후 40분 안에 글 한편 써내는 훈련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주어진 시간 안에 어떤 주제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고 글 한편 뚝딱 써 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처음부터 채점관들을 ‘솔깃하게’ 만들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중요합니다.
다음 관문은 현장 평가. 45기 전형의 경우 장장 4일 동안 진행됐습니다. 첫 째 날에는 토론 평가가 있었습니다. 두 개의 주제가 주어지고 그에 대해 난상 토론을 벌이는 형태로 진행됐습니다. 한 번에 6명 정도가 한 조가 돼 6~7명의 부장단 앞에서 토론을 했습니다. 토론 면접 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장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논리를 전개하거나,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경우, 침 튀기며 홀로 장시간 ‘열변’을 토하는 경우 모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둘째 날과 셋째 날엔 현장 취재가 진행됐습니다. 첫 날은 경복궁, 코엑스, 북한산 등 몇 개의 장소 중 하나를 선택해 ‘르포 기사’를 쓰는 형식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큰 주제를 잡아 머리 속에 넣어두고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발품을 파는 일입니다. 부지런히 발로 뛸 때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곳에서 기사거리가 보일 수 있습니다. 첫날은 ‘코엑스에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주제로 르포 기사를 썼습니다. 다음 날 역시 몇 개의 주제들이 주어지고 그에 대한 기획 기사를 작성해야 했는데, 저는 ‘인터넷’을 큰 주제로 잡아 ‘인터넷을 통해 뜨는 사람들’에 관해 썼습니다. 취재수첩 작성 역시 평가 대상입니다.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적합한 취재원들을 만났는지, 꼭 필요한 질문을 던졌는지 꼼꼼히 기록하는 게 중요합니다. 마지막 날에는 통계청의 자료를 보고 스트레이트 기사를 작성하고, 1시간 동안 기자 회견을 한 후 인터뷰 기사를 쓰는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이제 마지막 관문인 최종 면접. 어깨 펴고, 당당하되 예의 바르게 임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기소개서에서 강조한 부분, 자신만의 장점, 그리고 안티조선과 최근 이슈는 단골 질문이니 한번 정리해두시기 바랍니다.
전화로 최종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강남역 한복판에서 너무 기쁜 나머지 허공에 꾸벅거리며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연거푸 외쳤던 기억이 납니다. 새벽 녘 경찰서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우격다짐으로 빵 하나와 우유 한 팩을 삼키며 아침을 때울 때도, 2진 기자실 한구석에 몸을 꼬깃꼬깃 구긴 채 새우잠을 잘 때도, 선배들의 애정 어린 꾸지람에 마음속으로 눈물 한 방울 꿀꺽 삼킬 때도 저를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바로 그 때의 기쁨이었습니다. 저와 똑같은 기쁨을 느끼게 될, 그래서 하루하루 현장을 누비고 다닐 후배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지난 5월 저는 벌써 이틀째 한 취재원의 집 앞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시멘트로 된 계단에서 냉기가 올라와 몸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가지고 간 신문지를 덮었습니다. 대답 없는 상대에게 수십 통의 전화를 걸었습니다. 왜 그러냐고요? 만나주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마침내 그 사람에게서 “만나겠다”는 전화가 왔을 때 쾌감이란.
안녕하세요. 45기 박수찬입니다. 지난 6개월간 수습을 하면서 저는 기자에 대한 고상한 생각은 다 버렸습니다. 제가 보고 배운 것은 더 정확한 팩트(fact)를 더 빨리 얻으려 피나는 노력과 인내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 석자 달린 기사가 나왔을 때 오는 희열.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곧 하게 될 그런 경험 말입니다.
매년 언론사 시험이 끝나면 인터넷 게시판이 뜨겁습니다. “도대체 합격 기준을 모르겠다”는 푸념부터 “그 사람은 아버지 때문에 됐다”는 음모론까지 나오죠.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기자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고 글을 읽고 쓰는 준비하신 분이라면 이미 합격권 안에 계신 겁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순간의 집중입니다. 남은 전형기간을 남보다 좀더 집중해서 보내신 분은 꼭 합격하실 수 있습니다.
1. 자기소개서, 면접관을 유혹하라
조선일보의 서류 전형은 다른 언론사보다 ‘여유로운’ 편입니다. 나이나 영어점수는 크게 신경 쓰지 마세요. 제 동기 가운데는 저보다 5살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단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최종 면접시험을 염두하고 쓰세요. 저는 자기소개서를 쓸 때 면접관들이 제가 원하는 질문을 하도록 유인한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내가 싸우기 편한 곳으로 상대를 이끌어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법입니다. 내 인생에서 남다른 부분, 조선일보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면접관의 눈에 들게 하는 전략. 자기소개서에는 그런 유혹의 글쓰기가 필요합니다.
2. 영어 국어 작문
1차 시험인 영어와 국어 시험은 아시는 대로 어렵습니다. 각 과목의 시험시간은 50분이고 그 안에 다 풀어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는 남은 기간을 영어 공부, 국어 공부에 집중하는 것은 큰 도움이 안 됩니다. 저는 GRE 교재 같이 대학원 수준의 영어교재를 골라 영어단어만 정리했습니다. 여러분의 기본 실력을 믿으세요.
저라면 남은 기간, 작문에서 승부를 보겠습니다. 50분 안에 글 한편을 써내는 것은 연습이 필요하니까요. 작문 주제는 대게 시험이 있는 그 주에 정해집니다. 그러니 시험 1주일 전부터는 신문을 더 세밀하게 읽으면 도움이 되겠죠. 예를 들어 저희 때 작문 소재는 대화와 연설이었는데 바로 전날 신문에 실린 칼럼 주제였습니다.
한 가지 더. 여러분의 글을 돋보게 하려면 적당한 구체적 사례로 글을 이끄는 게 좋습니다. 주간지나 책을 읽을 때 꼭 “다음에 써 먹겠다”는 생각으로 사례를 정리해 두세요. 구체적인 글이 좋은 글입니다.
3. 현장 평가와 면접
저희 때는 첫날은 지하철역, PC방, 산 이런 식의 장소를 제시해 주고 직접 그곳에 가서 취재를 한 뒤 기사를 쓰게 했습니다. 일종의 르포나 스케치 기사인 셈입니다. 둘째날은 키워드를 여러 개 주고 기사를 쓰는 식이었습니다. 두번 모두 5시간 정도를 취재할 시간을 주고 원고지에 펜으로 기사를 작성합니다.
첫날 저는 아파트 근처에 있는 PC방에 가서 컴퓨터 게임에 빠진 초등학생들을 취재했습니다. 르포기사는 결국 어떻게 현장감 있게 써내는가가 관건이기에 최대한 구체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PC방에 빠진 초등학생의 사례를 잡아서 갈 곳 없는 아이들로 붐비는 PC방 분위기와 섞어서 기사를 만들었습니다. 둘째 날은 혼혈인 문제에 대해 기사를 썼습니다. 주제를 “혼혈인에 대한 정부 지원이 없다”로 잡고 혼혈인 단체, 교육부, 보건복지부에 전화를 했습니다. 정부 쪽으로 주제를 잡은 것은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공무원 쪽을 취재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현장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최근 이슈를 가지고 미리 여러 개의 기사 개요를 세워 놓고 시험장에 들어가야 합니다. 저는 시험보기 전에 혼혈 문제가 나올 거라고 미리 생각하고 대략이나마 주제를 잡고 갔던 게 유효했습니다. 현장 평가 기사쓰기의 기본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기사의 제목을 미리 생각해 놓는 것입니다. 제목이 분명해지면 이미 기사의 반은 쓴 겁니다.
현장 평가에는 이외에도 부장, 차장급이 참석하는 실무 면접과 보도자료를 주고 기사를 쓰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임원 면접. 역시 예의바르고 자신감 있게 하시면 됩니다. 단 하나 기억하실 것. 제가 앞서 말했듯이 면접관으로 하여금 여러분들이 원하는 질문을 하도록 잘 유도하세요. 조선일보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는 최대한 구체적인 평가를 하시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의 국제면은 중앙일보, 동아일보, 한겨레와 비교했을 때 구체적으로 이렇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서초경찰서 기자실 책상 유리 아래에는 수많은 명함이 꽂혀 있습니다. 수습기자로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흔적이죠. 44기 선배들의 명함도 보이네요. 물론 제 명함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러분이 명함을 꽂을 차례겠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이메일 보내주세요. 자, 모두 건승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