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 '나쁜남자' 등 김기덕 감독 영화의 대표선수급 주연 배우였던 조재현(41)은 블록버스터 영화 '한반도'에 출연한 것만으로도 '외도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김기덕 감독이 언론사에 '사죄문'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보내 한국 영화계에서 물러날 뜻을 밝히던 날, 한때 김 감독의 '단짝'이었던 조재현은 가수 임재범의 뮤직비디오를 찍고 있었다. 1991년 발표된 이문세의 히트곡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리메이크한 임재범 노래의 '뮤비' 감독 겸 주연을 맡은 그는 최근 경남 통영 앞바다 소매물도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다. 임재범의 노래는 작곡가 이영훈이 자신의 노래를 여러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담는 프로젝트 '더 스토리 오브 뮤지션스(The Story of Musicians)'의 첫 작품 '옛사랑'의 타이틀 곡으로 수록된다.

- 어떻게 감독을 맡게 됐나.

"7~8월에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천년학' 촬영이 없어 자극이 될 만한 일을 찾던 중이었다. 차인표를 통해 이영훈 작곡가와 연결이 됐다. 요즘 중학교 이후 그만뒀던 그림그리기에 다시 취미를 붙였다. 그것과 영화 촬영 메커니즘을 잘 버무리면 짧은 뮤직비디오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 뮤직비디오의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

"헤이리의 미술관에서 특이한 그림을 봤다. 소녀가 꽃무늬 치마를 입고 시골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하반신만 그린 건데, 현실과 상상의 공간이 겹쳐지는 뮤직비디오 스토리에 딱 맞는 이미지였다. 스토리는 새벽 어촌, 사진 작가가 렌즈에 잡힌 꽃무늬 치마 소녀를 쫓아가다가 예전에 와 봤던 어떤 곳에 도착한다.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꺼내보면 꽃무늬 치마의 소녀가 나타나고…. 이런 식이다. 사진 속의 소녀와 현실에서 주인공이 만나는 소녀의 이야기가 겹쳐지는…."

- 감독을 해보니 배우할 때와 뭐가 다르던가. 감독 겸 배우, 어디에 더 집중했나?

"감독은 전체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사실 난 감독이 새벽 6시에 촬영한다고 모이라고 하면 군말 많던 배우였는데, 감독이 되니까 새벽부터 촬영을 시작하게 되더라. 화면에 잡히는 내 모습보다는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 데 더 신경을 썼다."

- 김기덕 감독이 만드는 저예산 영화의 주연을 주로 맡다가 요즘에는 상업영화로 옮겼는데….

"김기덕 감독의 영화, 코미디 영화, 한반도에 출연한 것도 모두 '필(feel)'이 꽂혔기 때문이다. 뮤직비디오도 마찬가지고…. 나는 처음부터 자유롭게, 그렇게 살아왔는데…. 농담이겠지만 '요즘 돈이 좀 급해요?'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TV에서 따뜻한 남편, 빙상선수 아버지처럼 실제의 자상한 모습이 자주 나온다. 남성적 이미지가 강한 배우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닐 텐데.

"내가 좀 이율배반적으로 산다(웃음). 대한민국에서 가장이라는 자리는 선택을 제약할 때도 있다. 영화 '스캔들', '바람난 가족' 등 영화에서 섭외가 들어왔었다. 두 시나리오는 재미있었지만 포기했다. 내가 생각하는 배우의 길과, 가장으로서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길은 너무 힘들다. 다른 아버지들도 마찬가지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