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흔했던 물건, 어느새 슬그머니 우리 곁을 떠나버린 물건을 찾아갑니다. 다시 만나 반가운 물건을 보고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리시면 좋겠습니다. ‘추억의 물건’을 발견하셨거나 소장하고 계시다면, 조선일보 주말매거진팀(02-742-5390)이나 조선영상미디어(02-724-6172)에 알려주세요.

물 한 바가지 붓고 손잡이를 열심히 위 아래로 움직이다 보면 '쿨쩍쿨쩍'…콸콸 물이 쏟아지던 수동 펌프를 기억하시는지. 강원도 홍천군 팔봉산 자락. 납작 엎드린 일자형 가옥에 사는 은점례 할머니(73)는 30여 년 전에 설치한 펌프를 지금도 아무 탈 없이 사용하고 있다. 이웃들이 하나 둘, 모터를 이용하는 '자동 수도'(?)를 쓰기 시작했지만, 할머니는 아직도 수동 펌프를 버리지 못한다. 이 동네는 주변의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많아 수량이 풍부한 편이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10자(3m)깊이 땅을 파서 '펌프 수도'를 놓았다. 3남3녀 중 5째인 딸 김선희(32)씨를 낳았을 때다. 할머니 가족 모두가 이 물을 마시며 살았다. 펌프로 퍼 올린 지하수는 비릿하기 마련인데, "우리 집 물 맛은 좋다"고 할머니는 자랑한다. "물이 마르지 않고, 잘 나오니까…." 할머니는 좀 번거로운 수동 펌프를 지금까지 사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할머니는 '종지곱배기'(펌프의 둥근 외관은 실린더, 내부 부품은 피스톤. 할머니는 이 피스톤을 '종지곱배기'라 부르는 듯 했다) 등 부속품은 홍천 읍내 철물점에서 구해 쓴다. 30여 년 전, 할아버지가 직접 설치한 수동 펌프. 할아버지 뿐 아니라 지금은 다 커서 도시로 나간 자녀들의 손때, 사랑, 추억을 담고 있는 수동 펌프야 말로 할머니에게는 '가보 1호'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