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상가(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 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 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뒤집는 구두들' (유흥준·상가에 모인 구두들). 우리네 상가는 으레 왁자지껄하다. 술 마시고 화투패 돌리고 고함과 시비 소리도 오가며 밤을 밝힌다. 질펀한 분위기가 이청준의 소설 제목처럼 언뜻 '축제' 같기도 하다.
▶밤샘 문상(問喪)은 주자가례(朱子家禮)가 정착된 조선조 이후 널리 퍼졌다. 상가에서 곡소리가 잠시도 끊겨선 안 되고 가족들이 휑하니 관을 지키게 하는 것도 딱해서 조문객들이 품앗이를 하는 것이다. 일본에선 '쓰야(通夜)'라고 해서 유족과 친지들이 '모야(喪屋)'에서 함께 밤을 새운다. 미국 장례식장에서도 고인을 위해 특별한 기도를 올릴 필요가 있을 때 '철야(vigil)'를 한다.
▶술까지 마셔대는 장례 풍경은 흔치 않다. 인도는 상중(喪中)에 음주와 유흥을 삼간다. 열흘은 망자(亡者)의 혼이 맴돈다고 여겨 근신한다. 열하루째 비로소 친척과 가까운 문상객들에게 잔치를 열어준다. 러시아에선 시신을 묻는 날, 고인의 집에서 점심을 차린다. 술은 마셔도 조금 마신다. 보드카 두어 잔이라고 한다. 술 센 러시아 사람들로선 많이 삼가는 셈이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1996년부터 장례식장에서 술·담배·고스톱·밤샘·음식 5가지를 금했다. 건전한 상가문화를 키워보겠다는 뜻이었다. 술과 음식을 차릴 필요가 없으니 비용이 여느 장례식장의 5분의 1밖에 안 든다. 오래 죽칠수록 얼굴이 선다고 여기는 풍토에서 아예 밤샘을 막는 장례식장이 은근히 반가운 조문객도 있었을 것이다. 이 병원이 '조문 5불(不)'을 다시 허용할지 검토하고 있다 한다. 장례식이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왜 술과 음식을 막느냐는 항의와 다툼이 잦아지면서 상주들이 이곳을 꺼린 것이다.
▶한 판 장례식을 다룬 이청준의 '축제'는 화해로 끝을 맺는다. '사자(死者)의 모습은 뒤에 남은 자손들의 삶의 모습으로 남게 된다.' 장례식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응어리를 씻어내는 '사자를 위한 축제'이자, 남은 이들끼리도 상실의 아픔을 껴안고 화해의 손길을 나누는 '산 자들의 축제'라 할 수 있다. 장례식이 그런 자리가 되려면 무작정 떠들고 마시는 게 도리라는 속설부터 벗어야 한다.
(주용중 논설위원 midway@chosun.com)
입력 2006.06.04.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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