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 상황을 보고 자포자기했습니다. 4년 전 악몽까지 떠올라서…."
1일 오전 열린우리당 박영순(58·사진) 구리시장 당선자의 선거사무실. '새벽의 기적'이 준 황홀함이 채 가시지 않은 듯했다. "개표 초반부터 2000표 넘게 뒤지는 걸 보고 그냥 집으로 갔습니다. 허탈감에 투신자살까지 생각했어요."
'한나라당 해일'에는 구리도 벗어날 수 없는 듯했다. 상대인 한나라당 지범석 후보는 시작부터 그를 앞서 나갔다. 투표함을 열 때마다 차이는 커졌고, 자정쯤엔 2300표까지 벌어졌다. 추격은 요원(遙遠)해 보였다.
2002년 선거가 떠올랐다. "그때도 처음부터 뒤진 상황에서 힘겹게 쫓아가다가 결국 졌어요. 광풍(狂風) 같은 한나라당 기세를 볼 때 이번엔 더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죠."
개표 현장의 기자들도 대부분 떠났다는 얘기가 들렸다. 그도 20여명 지지자들과 함께 사무실 문을 닫았고, 모두들 힘없이 흩어졌다. 가족들은 그의 '이른 귀가'를 침묵으로 맞았다. 그는 멍하니 한참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이제 정치를 그만둬야 하나, 4년을 그렇게 뛰었는데 (유권자들이) 정말 야속하다고 생각했어요."
새벽 1시30분, 개표장의 참모로부터 "표 차이가 700표까지 줄었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다시 사무실로 달려갔고, 지지자들도 100명 가까이 다시 모였다. 2시30분에는 400표 차, 오전 3시를 넘기면서는 급기야 90표를 앞서기 시작했다.
새벽 3시40분 개표가 마감됐다. 2만9572표(43.4%) 대 2만8911표(42.5%). 그가 661표 차로 신승(辛勝)했다. 수도권 전체를 통틀어 한 명뿐인 여당 소속 단체장이 탄생했다. 박 당선자는 "'한나라당 쓰나미'를 막아준 시민께 감사드린다"며 "혼신의 힘을 다해 '명품 도시' 구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박 당선자는 목포고와 공주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전북 정읍여중 등에서 영어교사를 하다가 1975년 외무고시에 합격, 외무부·내무부·청와대에서 근무했다. 1994년 임명직 구리시장, 1998년 민선 2대 구리시장을 지냈다.
입력 2006.06.0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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