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화가 중에서 이경윤(李慶胤) 이영윤(李英胤) 형제와 이경윤의 아들 이징(李澄)은 특이한 존재이다. 봉호(封號·임금이 내린 호)가 학림정(鶴林正)이었던 이경윤은 인조 때의 종실(宗室), 곧 왕족이었기 때문이다. 고려에는 명종(明宗) 충선왕(忠宣王) 공민왕(恭愍王)처럼 그림을 잘 그렸던 임금들이 있었지만 조선에서 왕족 출신 화가는 특이했다.
조선에서 유행했던 화풍 중의 하나가 절강성(浙江省) 출신의 대진(戴進)을 중심으로 이룩된 절파화풍(浙派畵風)이다. 이는 대경산수인물화(大景山水人物畵)와 소경산수인물화(小景山水人物畵)가 특징인데, 이경윤이 조선 중기의 절파화풍을 대표하는 화가이다. 이경윤의 동생 이영윤은 형과는 달리 주로 문인화를 뜻하는 남종화풍을 수용했다. 이영윤이 그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방황공망산수도(倣黃公望山水圖)'는 남종화풍의 정착과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이경윤의 서자인 이징은 주로 중인들이 들어갔던 도화서의 화원으로 활약했는데, 그는 조선 전래의 안견화풍과 부친의 절파화풍을 받아들여 자신의 양식을 형성했다. 역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이금산수도(泥金山水圖)'나 '연사모종도(煙寺暮鐘圖)'는 그의 화풍을 잘 나타내는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이경윤의 작품은 호림박물관 소장의 '시주도(詩酒圖)'만 진품으로 여겨졌는데, 동시대의 문인 최립(崔?)이 그림에 쓴 찬문에 '학림공(鶴林公)'이란 봉호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열상화보(洌上畵譜)에는 '석상분향도(石上焚香圖)'란 이경윤의 작품 이름이 나오지만 실물은 전하지 않는다.
오는 25일부터 6월 11일까지 일제의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1852~1919)가 가져갔던 작품 중 일부가 '데라우치의 보물, 시서화(詩書畵)에 깃든 조선의 마음'이란 이름으로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전시된다는 소식이다. 여기에 이경윤의 '낙파필희(駱坡筆戱)'라는 화첩집이 전시된다. 한 점도 아닌 화첩이라니, '시주도(詩酒圖)'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이덕일·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