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은 21세기 소설가에게도 창작의 주민등록지가 될 것인가? 지난주 소설가 함정임씨가 인터뷰한 프랑스 소설가 조엘 에글로프에 이어 소설가 이응준(36)씨와 이메일 대담을 나눈 칠레 소설가 알레한드라 코스타마그나는 문학의 국적을 부인한다. 동갑내기 두 소설가는 한국문학번역원 주최로 5월7일부터 열리는 '2006년 서울, 젊은 작가들'에서 만난다.

▲이응준〓얼마 전 취임한 칠레 최초 여성 대통령 바첼레트는 사회주의자 정치범이고, 싱글맘이다. 파격적으로 느껴진다.

▲알레한드라 코스타마그나〓여자가 취임했다는 것보다 여자인 나를 열광케 하는 것은 그녀가 이혼했고, 자녀는 펑크 패션을 따른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족구조보다 바첼레트 대통령 가족이 오히려 요즘 칠레 가족의 일반적 형태이다.

▲이〓내게 '칠레'는 남태평양 이스터섬의 모아이(거석상)들이다. 칠레를 당신만의 언어로 설명해 줄 수 있는가?

▲코스타마그나〓내 조국 칠레가 어떤 나라인지 해답을 얻지 못했다. 칠레에서 나고 자랐지만 나는 칠레 혈통이 아니다. 애국심이란 단어에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지구의 어느 한곳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니까. 내게 국가란 친구들, 거리의 냄새, 자주 들르는 바(bar), '시추'라는 개, 특정한 책들, 몇 통의 편지 등일 뿐이다.

▲이〓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imagine)처럼 천국도 국가도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런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 내게 국가는 오히려 내가 세계인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다만 누군가의 국가와 애국심이 다른 나라에 상처가 되지 않는 세상을 꿈꿀 뿐이다.

▲코스타마그나〓국가와 개인뿐 아니라 문명 간의 갈등도 우리가 지켜볼 부분이다. 마호메트를 풍자한 덴마크 신문 만평으로 불거진 사태는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표현의 자유와 신앙의 존중 사이의 대립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세속화이다. 19세기부터 기독교는 세속화했지만 이슬람교 대부분은 신권정치 지배 아래 있다.

▲이〓문명권을 구분하는 제1의 기준은 종교다. 그런데 세상의 종교들이 종교성이라는 본연을 잃고 종교라는 껍데기만 남아 분쟁을 조장한다. 독일 철학자 아도르노는 '전체는 거짓'이라고 했는데 오늘날 종교는 그 전체가 되려 한다. 종교성을 상실한 종교는 더 이상 종교가 아니라 끔찍한 전체주의에 불과하다.

▲코스타마그나〓그렇다. 종교는 개개인의 문제이므로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당신이 쓴 '개와 예술에 관한 몽상'이란 산문을 읽어보니 일상과 예술을 연관짓는 관점이 마음에 든다. 칠레 시인 클라우디오 베르토니는 '바로 그 순간'을 항상 어느 곳에나 있는 당신이라고 말했는데, 내게도 일상은 매우 큰 의미를 갖는다. 가시적이고 공공적인 세상에서 메아리치는 개인의 세상, 또는 거시적인 세상과 미시적인 세상들의 교차점에서 작가가 주목해야 할 문명충돌을 포함한 현시대의 모든 분쟁들도 발생한다고 본다.

▲이〓거시적인 시각은 이 지구에서 발생하는 모든 비참한 것들을 '무정한 게임'으로 환원시켜버린다. 나 또한 이러한 시대에 진지한 문학은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탐구해야 한다고 본다. 종교보다 종교성이 중요한 것처럼, 우리에게도 시(詩)보다는 시적인 것을 회복하는 것이 문학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