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 이촌(耳村) 이강국(李康國·1906~1955)은 한국 현대사의 미아(迷兒)나 다름없었다. 광복 직후 박헌영(朴憲永) 휘하에서 남로당으로 활동했고, 월북한 이후에는 간첩으로 몰려 사형당했기 때문에 남과 북 양쪽에서 한결같은 '기피 인물'이었다. 최근 TV드라마 '서울 1945'에서 이강국을 연상케 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새삼스런 관심을 얻고 있지만, 학계의 연구는 여전히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 그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가 출간됐다. 정치학자인 심지연(沈之淵) 경남대 교수가 새로 낸 '이강국 연구'(백산서당). 심 교수는 "이강국은 일제시대와 해방 정국에서 좌익 진영의 이론가이자 조직가로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던 정치인으로 언제나 논쟁의 한 가운데 서 있었던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에 대한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서는 해방전후사의 많은 부분이 누락되는 것"이란 주장이다. 이강국의 기고문과 그가 활동했던 단체의 문서 등 발굴 자료들도 300쪽 가까이 책에 수록됐다.
그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이자 '정통 이론가'였다. 경성제대 입학 이후 마르크시즘 이론가로 유명한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교수로부터 공산주의를 배웠고, 1932년 독일 유학을 떠나 베를린대학에서 공부했다. 심 교수는 "당시 다른 사람들처럼 유행이나 권유에 의해 좌익 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공산주의를 연구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935년 귀국 이후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이주하(李舟河)와 함께 적색노조운동에 투신했다. 광복 이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하고 박헌영과 함께 '8월 테제'를 작성하는 등 좌익 진영의 대표적 이론가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나 미 군정과의 충돌로 1946년 월북했다. 유명한 여간첩 김수임이 그의 애인이었다.
심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일제시대 좌익 진영은 노동·계급운동 자체를 민족 문제의 한 수단으로 이용한 측면이 곳곳에서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이강국과 이주하가 일제시대 '일본군 안에 있는 조선인의 존재를 부정해선 안 된다'고 말한 사실도 이번에 발굴된 부분이다. 식민 치하에서 조선 민족이 군사력을 갖추려면 그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심 교수는 "이강국 등 남로당계가 몰락한 것은 그들 자신의 이상주의적·급진적인 이념 노선이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미제(美帝)의 간첩'으로 몰린 마지막의 구체적인 진상에 대해선 "현재로서는 판단이 힘들다"고 유보하면서도 "'정치 게임' 속에 희생되면서 커다란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