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들 머리가 길어진다.
지난 21일 막을 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4강 신화를 이룬 한국팀의 맏형 이종범(36) 선수. 전성기 못지않은 기량과 함께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야구 헬멧 밖으로 쑥 나온 그의 장발이었다. 짧은 스포츠 머리의 날렵한 '도루왕' 이종범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긴 머리 휘날리는 그의 모습은 낯설어 보이기까지 했다.
최근 들어 30~40대 아저씨들 사이에 장발(長髮)이 유행이다. 전형적인 '한국 아저씨' 스타일 상고머리는 가장 긴 머리카락의 길이가 5~6㎝ 인 반면, 요즘 인기인 롱 헤어 스타일은 정수리에서 목까지 머리카락 길이가 15㎝ 이상으로 옆 머리가 턱선까지 오는 정도다.
10~20대 '꽃미남' 스타들이나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이 스타일을 중장년층에게 확산시킨 건, 역시 또래의 연예인들. 연기자 백윤식(59), 최민수(44), 송강호(39), 가수 이문세(47)는 '변신'을 시도한 후, "인상이 부드러워졌다"는 호평을 듣고 있다.
'헤어쌍떼 백호' 서초점의 백호 원장은 "2년 전만 해도 남성 고객의 절반 정도는 클리퍼('바리캉'으로 불리는 기계식 커터)를 이용해 깔끔하게 이발했는데, 이제는 7대 3 비율로 시저컷(가위만 사용하는 유럽식 커팅)을 많이 한다"며 "30~40대 자영업자는 물론, 50대 샐러리맨까지 평균 턱선 정도, 많게는 목 뒤로 3~5㎝까지 긴 머리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남성전문 헤어살롱 '블루클럽' 광장점 미용사 김정례씨도 "개인사업을 하는 남성의 20%는 긴 머리를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저씨들이 장발로 회귀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멋과 개성 때문이다. 태평양 뷰티트렌드팀의 헤어담당 최숙희 과장은 "남성 뷰티 시장이 성숙해지면서 멋과는 담쌓았던 중년들이 자유로운 개성 연출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라며 "70~80년대 통기타 시절 장발에 대한 향수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머리를 기르고 살짝 파마를 한 안영빈(40·회사원)씨는 "TV 속 장발 연예인들을 보면서 나도 대학시절처럼 다시 한 번 길러 보겠다고 결심했다"며 "주위에서는 '젊어 보인다' 아니면 '그게 뭐냐'로 양극이지만 틀에 박힌 일상과 아저씨 이미지에서 일탈한 것 같아 기분은 좋다"고 말했다. 신수길(41·양천구청 공무원)씨는 "이종범 선수 보니까 장발이 왠지 로맨틱해 보이더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공무원이 아니었으면 나도 한 번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