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화가 황주리의 아크릴화 '그대 안의 풍경'(22×27.2㎝). 200자 원고지 두 장을 캔버스 위에 이어 붙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다정하게 앉아 있는 남녀, 식물에 물을 주는 사람, 골프를 치는 사람 등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그림일기처럼 한 장면 한 장면 담은 작품이다. 황씨는 80년대 초에 즐겨 했던 이 스타일을 최근 20점짜리 시리즈로 다시 그렸다. 단체전 '작은 그림·큰 마음'(22~31일 노화랑)에 한 점당 100만원씩 내놓기 위해서다. 이 전시에는 또 이두식의 아크릴화 '축제'(33×24㎝), 이수동의 아크릴화 '안녕하세요?'(33.4×24.2㎝), 송수남의 한국화 '매'(梅·37×34㎝) 등 중견 작가 6명의 최신작 270점이 일괄적으로 100만원에 나와 걸려 있다. 갤러리에서 웬 균일가전? 양대 경매회사의 질주에 맞서 노화랑이 내놓은 대응책이다.

"당신도 컬렉터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손짓을 하는 '저렴한 미술시장'이 중소화랑을 중심으로 생겨나고 있다. 노화랑의 노승진 대표는 "그림 수집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에 화랑의 문턱을 낮춰봤다. 경매회사로 손님을 다 빼앗길 수는 없기에 이런 기획을 했다"고 말했다. 옛날부터 집 벽에 민화 한 점씩 붙여놓고 부담 없이 즐기던 우리. 하지만 미술이 투자의 대상이 되면서 오히려 그림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많다. 중소화랑의 변신은 이런 사람들을 다시 미술애호가로 만들고 있다.

젊은 작가를 주로 다루는 갤러리 쌈지는 이달 초에 50만원 이내 작품을 상설 전시·판매하는 ‘쌈지 아트마트’를 열었다. 이불 김원숙 김수자 윤석남 한젬마 낸시랭 데비한 등 중견·신진 작가 60여명의 드로잉, 판화 등이 이 갤러리의 전시실로 들어가는 입구 양쪽 벽에 다닥다닥 걸려 있다. 주부 우경미(38·경기도 일산)씨는 지난주 여기에서 김원숙과 김수자의 판화를 각각 15만원에, 이진경의 드로잉을 18만원에 샀다. 우씨는 “원래 그림을 좋아하지만 구입할 엄두는 못냈는데, 우연히 전시를 보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 괜찮은 가격에 걸려 있어 놀랐다. 옷이랑 구두 사는 걸 몇 번 줄이고 대신 그림을 세 점이나 사서 집에 걸어두니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