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3시40분 김포공항 활주로. 제주행 대한항공 KE1243편 항공기가 이륙준비를 마치자 탑승한 6명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들은 비행공포증, 고소공포증, 폐쇄공포증 환자들이다. "주먹을 꼭 쥐고 손목을 구부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무릎을 힘껏 펴세요. 그리고 서서히 힘을 빼는 겁니다. 온몸이 나른해지죠? 긴장이 풀리는 신호입니다. 이제 복식호흡을 해 봅시다."
비행공포증연구소 이상민(37) 소장이 이들에게 '근육이완요법'을 지시했다. 비행공포증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곳은 국내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잠시 후 격렬한 엔진음과 함께 항공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불안감 때문에 탑승 전 늘 신경안정제를 복용해야 했다던 서모(43)씨는 창밖을 바라보지 못했다. 폐쇄공포증이 심했다는 박모(40)씨는 두 팔을 웅크리고 눈을 감은 채 심호흡을 계속했다.
이모(39)씨는 항공기가 이륙하거나 난기류를 만날 때면 비행기가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던 상황적 특정공포증 환자. 중국에서 섬유업체를 운영하며 지금까지 600여 차례 비행기를 탔지만 2002년 심한 난기류를 겪은 뒤 갑자기 두려움이 커졌다고 했다.
"비행기를 안 탄 지 1년쯤 됐어요. 일본 오사카에 갈 때도 부산까지 KTX로 가서 배를 타고 10여 시간 넘게 갔죠. 이럴 순 없다고 생각하고 도전했습니다."
전날 연구소에서 비행 원리와 항공기 운항에 대한 기본 강의를 들은 이들은 이날 오전 대한항공 훈련센터를 찾아 지상 훈련을 받았다. 실제 비행기 객실과 똑같이 만든 시설에서 녹음된 항공기 소음을 들으며 "나는 불안에 맞설 힘이 있다", "불안한 것과 위험한 것은 아무 관계가 없다" 등 자기 암시를 반복했다.
"난기류 겪고 1년 안 타 치료 받으니 자신감…"
공포증 가진 교육생 90%이상 "효과 봤다"
"보잉 747 항공기의 엔진 4개 중 2개가 꺼져도 목적지까지 비행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1920년대 상업 비행이 시작된 뒤 터뷸런스(난기류)를 만나도 항공기가 추락한 적이 없죠. 기분이 불쾌할 수는 있지만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단 말입니다."(안 교수)
이상민 소장은 "비행공포증은 앞서 발생할 일을 미리 걱정하는 마음의 병"이라며 "단계적 치료에 의해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이 소장은 "2004년 초부터 150여명의 비행기 공포증 환자들이 교육을 받아 90% 이상 효과를 봤다"고 말했다. 이륙을 앞둔 비행기를 활주로에 세우고 내렸던 개그맨 남희석씨도 교육생 중의 하나였다.
40여분의 비행 끝에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한 이들은 공항 앞에서 5분 동안 간단한 소감을 나눈 뒤 재차 서울행 비행기에 옮겨 탔다. "더 심한 흔들림도 견뎌보자"는 이 소장의 지시에 따라 좌석은 맨 뒤쪽. 폐쇄공포증 환자들은 기내 화장실에 머물면서 공포와 싸웠다.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기체는 적잖이 흔들렸지만 긴장이 풀린 탓인지 간간이 토막잠을 자는 환자도 보였다. 착륙을 앞두고 이들이 써 내려간 엽서 곳곳에는 불안감을 털어낸 기쁨이 묻어 있었다.
입력 2006.03.01. 22:21업데이트 2006.03.0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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