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의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펼쳐진 가수 비(23·정지훈)의 공연이 끝난 지 1주일. 공연 전의 흥분과 공연 후의 혹평.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만은 여전하다. ‘비’의 오늘을 만든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박진영(34). 한 해 매출액 350억원인 ‘비’ 신드롬의 ‘배후’ 박진영을 10일 만났다.
―비의 첫 미국 공연에 대한 반응이 엇갈린다.
"이번 공연은 미국측 사업 파트너를 위한 쇼케이스(맛뵈기) 성격이 컸고, 정식 진출은 아니다. 지나친 의미 부여는 우리도 부담스럽다. 10월 미국에서 내는 첫 앨범이 관건이다. 50만장 판매가 목표다. 광고, 영화, 미국 인기가수와의 공동작업 등으로 인지도를 높인다면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독창성이 없다'는 뉴욕타임스의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비의 퍼포먼스와 내가 작곡한 음악에 대한 걱정은 전혀 없다. 비판적 의견에는 '너희들이 미국인만큼 할 수 있겠느냐?'라는 필자의 무의식도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그리고 솔직히 한국과 아시아에서 사랑받는 음악이 미국 최신 음악보다 시기적으로 다소 뒤처지는 것도 사실이다. 음악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퍼포먼스도 평가절하됐을 것이다. 리뷰가 어떻든 실제 음반업계의 반응은 뜨겁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뜨거운가?
"힘들게 불러모은 아일랜드 데프잼 등 미국 유명 음반사 사장과 뮤지션들 반응이 좋다. 비를 중심으로 아시아 뮤지션 음악 소개를 위주로 하는 음반사를 만들자는 파트너 제의를 서너 군데서 받고 있고 광고, 춤을 소재로 한 영화 출연 논의도 이어지고 있다."
―비는 아시아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굳이 미국에 집착하는 이유는 뭔가?
"역설적이지만 아시아 시장을 계속 잡기 위한 것이다. 분명, 내년쯤 되면 누군지는 몰라도 '중국의 비'가 나올 것이다. 그의 실력이 비의 절반밖에 안 된다 해도 중화권에서는 그에게 더 큰 성원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뉴 키즈 온 더 블록' 때문에 난리였지만 HOT가 나온 후에는 '엔싱크', '백스트리트 보이스' 같은 영미권 보이밴드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어졌지 않나? 그래서 지금 안주하면 안 된다. 미국이라는 최고의 무대에서 성공해야 '아시아 공인 1등'으로 자리를 굳힐 수 있다. 거대한 인구를 지닌 아시아 시장을 다 먹기 위해 미국 진출이 필수다."
박진영은 '비'를 만든 프로듀서일 뿐 아니라 미국서 윌 스미스 등 굵직한 가수들의 음반 프로듀서로서도 자기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그가 미국으로 건너간 건 2년 전. LA의 주택가에 방 한 칸을 세내 데모(시연)CD를 들고 매일 20여 개 음반사를 돌아다녔다. "아무리 해도 안 될 것 같다"고 좌절하던 순간, 음반사 '오버브루크'가 윌 스미스의 앨범에 곡을 싣고 싶다며 그를 불렀다. 미국 간 지 11개월 만의 일이었다.
―당신의 재능을 알아본 것인가?
"하하, 내가 너무 괴롭혀서 그런 것 아닐까? 난 정말 한국식으로 밀어붙였다. 어차피 높은 사람은 만날 수 없으니까 안내 데스크에 CD를 맡기고, 직원들한테 간단한 간식을 사가기도 하고 농담 한마디라도 더 붙이려 하고. 그렇게 열 달 넘게 하니까 직원들 사이에 내 소문이 났다. 그래서인지 간부들이 내 음악을 들어 봤던 모양이다."
―한때 god, 박지윤 등 당신이 한국에서 만든 음악은 주류 흑인음악의 '판박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흑인음악은 원래 독창적인 게 아니다. 기본적으로 심플하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가 나왔을 때 그저 '아, 사람들이 나한테 거는 기대가 크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행을 결심한 것이다. '대단한 걸 한번 해보라는 얘기군. 그럼 미국 가서 1등 하지'라고 생각하며 비행기에 탔다."
―연예인 박진영은 거침없는 언행 때문인지 '안티 팬'도 많았는데.
"온 국민에게 사랑받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저 XX, 진짜 재수없어' 반(半), '박진영 괜찮아' 반 정도면 충분하다. 난 영원히 딴따라이고 싶고, 내 색깔이 없어지는 게 싫다. 지금도 인터넷에 '박진영, 나라 망신시키지 말고 돌아오라'는 등 안티 팬의 글이 많다. 웬만하면 노트북 폴더에 옮겨 놓고 하나씩 읽는다. 내 인생에 힘이 된다. 변태적인 것 같다. 하하."
―미국에 가기 전에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낼 때도 많았다.
"요즘은 통 신문을 안 보고 공부를 안 해서 그럴 수 없다. 나는 자본주의는 좋아하는데, 자본주의의 세습은 싫다. 가부장제와 호적제도 마찬가지다. 성 문제와 관련해 개방적이었던 나는 진보, 보수 막론하고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육체는 정신보다 하류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문제다. 나는 육체가 정신만큼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비의 무대에 내가 섰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은 없나?
"왜 없겠나? 비가 정말 부러울 때도 많다. 속상한 게, 내가 가수 할 때 지금의 나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비가 미국에서 자리잡으면 나도한국에서 꼭 앨범을 다시 낼 것이다."
―얼마 전 비가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난다는 이적설이 돌았다.
"비와 나는 함께 있으면 '1+1=2'가 아니라 그 이상이 되는 사이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비는 한때 내 제자였고, 내 가수가 됐으며, 지금은 내 파트너가 됐다. 회사 일도 함께 상의하는 사이다. 스타를 만드는 건 재능이지만, 수퍼스타를 만드는 건 근성이다. 비의 근성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