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누군가를 보고 그렇게 몸이 휘청할 만큼 가슴이 두근거린 건 처음이었다. 바로 내 앞에 줄을 서 있던 그녀는 '오늘의 커피' 작은 사이즈를 주문했고 나도 얼결에 늘 마시던 라떼를 버리고 그녀가 주문한 '오늘의 커피' 작은 사이즈를 주문했다. 다급히 뛰어나와 그녀의 뒤를 얼마쯤 따라갔지만 그녀는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교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멍하니 서서 그녀가 들어간 교문을 바라보며 말 한마디 붙여보지 못한 용기없는 나를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내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녀가 이화여대를 다닌다는 것과 몹시 아름답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도 난 그녀의 생김생김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몽타주로 그리면 당장 구속될 정도로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날 오후, 친하게 지내는 여자 후배를 만나 그녀에 대해 이야기 했다. 후배는 대뜸 그녀의 곁에 누군가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녀가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말했다. 후배는 말 안 걸길 잘했다고 했다. 후배는 그녀의 옆에 친구가 있었다면 내가 장동건처럼 생겼어도 거절 당했을 거란다. 그건 무조건 거절이라는 말과도 같은 것 아닌가? 후배의 말을 빌리자면 무조건 나를 씹을 것이라는 거였다.

"너 설마 저런 남자가 맘에 드는 건 아니겠지?"

"진짜 구리구리하게 생겼다."

"아무 여자한테나 시간 있느냐고 묻는 인간치고 정신 제대로 된 놈 못 봤다."

"뺀질뺀질하게 생긴 거 봐! 딱 보니 선수다 얘!"

낯선 남자에게 느닷없는 프러포즈를 받은 친구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해 줄 여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단다.

나를 망설이게 했던 무릎 나온 청바지나 낡은 운동화, 쇼윈도에 비친 칙칙한 내 얼굴은 큰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후배는 자신도 여자이면서 여자의 가장 큰 적은 여자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아~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당당하게 부킹을 넣을 곳이 진정 무도회장밖에 없는 것일까?

남자들은 그렇지 않은데 여자들은 왜 그럴까?

우린 그런 일이 생기면 대놓고 부러워하고 축하해주고, 그게 전부인데.

진짜진짜 여자들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신정구·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