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구속(拘束)돼야 할 이유일 수는 없습니다."
지난달 20일 서울중앙지법의 구속영장 실질심사 법정. 피의자 이모(28)씨가 고단했던 자신의 성장과정을 얘기하며 용서를 구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잃은 이씨는 이후 어머니마저 집을 나가자 연로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중학교 때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 학교도 다닐 수 없었다. 그에게 세상은 '비행(非行)'의 무대가 됐다. 16세에 소년원에 가기도 했다. 세상에 다시 나온 그는 목수 일을 배워 살아오다 작년 말 유혹에 이기지 못해 죄(청소년성보호법 위반)를 짓고 말았다.
그의 인생사를 들어본 영장전담 박철(朴徹) 부장판사는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박 판사는 "피의자는 어머니로부터 버림받고 사회로부터도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며 "그런 그는 우리 사회에 대해 한번쯤 용서와 온정을 구할 자격이 있다"고 했다. 박 판사는 그리고 "지금이 바로 사회의 용서와 온정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했다.
박 판사는 구속사유 판단에서도 이런 사회적 책임을 다시 강조했다. "이 청년은 주거가 '불안정'하긴 하지만 장기간 한집에 셋방을 얻어 살았으니 주거부정이라고는 할 수 없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그에게 이를 구속의 사유로 삼는다면 이는 그의 가난함을 죄라고 말하는 것인지 모른다."
구속영장은 또 그가 '도주의 우려'가 있다고 했지만, 박 판사는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 판사는 "그의 도망을 구속의 사유로 삼기에는 사회가 그의 어린 시절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야 할 법관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신은진 momof@chosun.com)
입력 2006.02.03. 17:35업데이트 2006.02.0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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